교회는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다음 금요일에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을 지내고, 바로 그다음 날 이어서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을 의무 기념일로 지낸다. 성체성사와 예수 성심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예수 성심을 기리는 이들이라면, 예수 성심을 평생 동반했던 성모님의 성심을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다.
교황 비오 9세께서 예수 성심 대축일을 온 교회의 축일이 되도록 결정하신 이래 교황 비오 12세께서는 예수 성심 대축일 제정 100주년을 기념하여 1956년 5월 15일에 회칙 「물을 길으리라(Haurietis aquas)」를 발표하면서 결론부에 이르러 다음과 같이 예수 성심과 성모 신심의 긴밀한 결합을 강조하신다:
「…예수 성심께 대한 신심을 천주 성모의 티 없이 깨끗한 성심께 대한 신심과 밀접히 결합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인류 구원사업을 수행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그리스도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곧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고통에서 샘솟아 나왔고 그 사랑과 고통에는 그분 어머니의 사랑과 슬픔이 긴밀히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를 통하여 그리스도께 하느님의 생명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성심께 마땅한 영광을 드리고, 그들 천상 어머니의 지극히 사랑하올 성심께도 그에 부응하는 신심과 애정, 감사와 보속 행위를 드리는 것이 마땅하고 옳을 것입니다.…(제124항)」
구약의 오랜 예언대로 실로 온 세상 만물이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의 샘에서 생명을 얻고 자란다: 「…샘물들이 시내를 이루게 하사, 산과 산의 사이로 흐르게 하시니 들의 모든 짐승이 마실 물을 얻삽고, 들노새 무리들도 갈증을 푸나이다 / 공중의 새들도 그 물가에 살며, 나뭇가지 사이에서 지저귀나이다 / 높은 다락집에서 산에 산에 물 주시니, 일하시는 보람이 땅에 가득하오이다 / 가축을 위하여는 풀을 내시고, 사람을 위하여는 청과를 내시니, 사람은 흙에서 밀을 거두고, / 그 마음 흥겨워지는 포도주하며, 얼굴을 윤나게 하는 그 기름하며 그 심기 돋우어 주는 빵을 얻게 되나이다.…(최민순 역 시편 103,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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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신의 마음, 수용의 마음
「……오늘 복음(루카 2,41-51)에서 소년 예수님은 부모님께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당신의 정체성이 오직 하느님 아버지께 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 즉 예수 성심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자신을 내던지는 투신投身의 마음입니다. 이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루카 22,42)라고 기도하신 모습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자신의 뜻을 온전히 아버지의 뜻에 맞추는 적극적인 순종의 마음입니다.
한편,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깊은 뜻을 당장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모 성심의 본질입니다. 성모님의 마음은 이해할 수 없는 신비 앞에서 따지거나 불평하지 않고, 모든 것을 끌어안고 묵상하며 하느님의 때를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성모 성심은 모든 것을 이해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신뢰하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수용受容의 마음입니다. 이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는 가브리엘 천사를 향한 응답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내어드리는 겸손한 순종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수도 생활은 이 두 마음 사이의 거룩한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공동체의 결정과 장상의 뜻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투신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나의 계획과 생각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집에 머물기 위해, 즉 공동체와 사도직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순명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성심을 닮아가는 길입니다.
아울러 우리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어려움, 공동체 안에서의 갈등, 뜻대로 되지 않는 사도직의 열매 앞에서 침묵하며 기다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왜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지 알 수 없을 때, 우리는 성모님처럼 그 모든 것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묵상하며 하느님의 시간을 신뢰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이 성모 성심을 살아가는 길입니다. 성모 성심의 최종 목적지는 예수 성심입니다. 성모님께서 모든 것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묵상하신 것은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의 마음을 티 없으신 성모 성심께 봉헌합시다. 그리하여 예수 성심의 사랑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투신하고, 동시에 성모 성심의 겸손함으로 삶의 모든 신비를 끌어안고 묵상하며 살아가기 위한 은총을 청합시다.(박정우 신부 sdb, 2025년 6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