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Pentecost

예수님의 체포와 십자가형 집행으로 그동안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 도망가거나 두려움 속에 숨어 두문불출하였다. 그러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오순절의 성령강림 이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된다. 유다인들만이 아닌 이방인들에게까지 나아가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다. 이를 암시라도 하듯 성령강림 장면을 기록하는 대목에서 성경은 “다른 언어들”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온” “저마다 자기 지방 말로 듣고 어리둥절해”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 말로 듣고 있으니” “저마다 자기 언어로”라는 구절들을 거듭 강조한다.(참조. 사도 2,1-13)

‘오순절’이라는 말은 신약성경에서 3번(사도 2,1;20,16 1코린 16,8) 등장한다. ‘오순절’은 한자로 다섯 번의 열흘(열흘 순旬)이 지난 날이라는 뜻이다. 이를 가리키는 성경의 언어 ‘펜테코스테(Πεντηκοστή, Pentecoste, 영어로 fiftieth)’라는 말에도 ‘5’를 뜻하는 pente가 들어있다. 이 말은 원래 구약에서 처음 수확한 농산물을 하느님께 바치던 “맏물의 날”(참조. 탈출 34,22 민수 28,26), “햇곡식을 바치는 축일”(참조. 민수 23,10-14)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유다인들은 이 말을 이집트를 빠져나와 시나이 산에 도착한 날이자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시나이 산에 올라간 날이며 하느님께로부터 율법을 받은 날로도 여겼다.(참조. 탈출 19,1.11.16)

그런데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오순절이 되었을 때 (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사도 2,1-4)라는 성경 기록에 따라서 부활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이며 성령이 강림하신 날로 오순절을 이해한다.

구약이 신약의 예형임을 강조하는 가톨릭교회는 구약의 모세가 받았던 율법을 신약의 성령 강림 때 제자들이 받았던 성령의 새 법과 연관하여 설명한다. 가톨릭 백과사전 역시 같은 내용으로 오순절에 관한 항목을 풀이한다.

돌판에 새겨진 옛 법과 마음에 새겨진 새 법

구약의 백성이 모세를 통해 오순절에 차가운 돌판에 새겨진 율법을 받았다면 신약의 백성은 오순절에 성령의 도우심으로 돌판이 아닌 사람의 마음에 새긴 새로운 법을 받았다. 흥미롭게도 기원전 627~586년 사이에 활약하였던 구약의 예레미야 예언자는 구약의 돌판에 새겨진 율법과 세월이 흐른 후 마음에 새겨질 새 법에 관한 기록을 다음과 같이 예언하듯 남겨놓는다: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안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그때에는 더 이상 아무도 자기 이웃에게, 아무도 자기 형제에게 ‘주님을 알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예레 31,33-34)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1993년 회칙 <진리의 광채(Veritatis splendor)> 제24항 역시 이러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확인한다: 「…토마스 성인은 이렇게 썼습니다. “새 법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주어진 성령의 은총이다.”(신학대전, 1-2, q.106, a.1 참조) 복음에 언급된 외적 명령들도 이 은총을 받아들이게 하거나 우리 생활 안에서 그 효과를 거두게 합니다. 사실 ‘새 법’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를 말해 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것을 행할, ‘진리를 실천할’(요한 3,21 참조) 힘을 줍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 역시 오순절날 하늘로부터 성령께서 내려오셨을 때 새 법이 반포되었음을 보았습니다. 사도들이 “모세처럼 손에 돌판을 들고 내려온 것이 아니라, 마음에 성령을 모시고 내려왔다. 그들은 성령의 은총으로 살아있는 법, 살아있는 책이 되었다.”고 그는 말하였습니다.(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마태오복음 강론Homiliae in Mathaeum, 1,1, PG 5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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