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나란스(homo narrans)

어렸을 때 국어 시간의 평가는 흔히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네 가지 항목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인간의 말이 이 네 가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언어는 문법과 어휘를 넘어 문학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능력, 비판과 해석의 힘, 담화와 소통의 감각까지 두루 갖추어야 비로소 품위를 얻는다. 그러지 못하는 말은 말이 아니라 소음이 되고, 뜻을 전하지 못하는 공허한 소리로 흩어진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호모 나란스, 서사적 존재(storytelling beings), 곧 이야기를 짓고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인간은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겪은 것들을, 설령 혼잣말이라 할지라도 이야기로 풀어내지 못하면 견디기 어렵다. 이야기를 통해 세상과 역사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이 의미를 찾도록 지어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오감을 통해 만물과 교감한다. 반드시 정교하게 다듬어진 문장이 아니어도 좋다. 때로는 문장의 파편이나 스쳐 지나가는 말마디, 문득 떠오르는 이미지 하나, 혹은 사물의 미묘한 내비침이 우리를 세계와 연결시킨다. 그러한 순간들이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신학적 설명이나 도덕적 교훈이 미처 다다르지 못하는 방식으로, 어떤 이야기와 장면들은 마음의 뒷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와 우리를 감동시키고 움직인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 안에서 발견되신다. 그리고 인간의 이야기 속에도 당신 자신을 은밀히 엮어 넣으신다. 우리는 그것을 ‘섭리’라고 부른다. 섭리는 우연처럼 다가오지만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섭리는 또한 책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다가온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책을 쓰고 읽으며 자신의 삶을 바꾸었다. 여행길에 우연히 집어 든 작은 책자 한 권, 그 안에 깨알같이 적어 둔 그때 그 순간의 감동, 그리고 오랜 세월 뒤 다시 펼쳤을 때 중간에 꽂혀 있던 책갈피의 한 장면. 어떤 이는 그 장면이 바로 세월 지난 그때의 자신에게 필요했던 이야기였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마치 그 책이 그 자리에서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책을 쓰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책이 냄비 받침이나 컵라면 뚜껑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쓴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활자 속에서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 활자로 남겨진 자신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자기 삶의 의미를 확인하려는 깊은 욕구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조용한 저항이며, 자기 존재를 객관적으로 확인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 마음속에는 하나의 소망이 숨어 있다. 단지 존재했던 사람이 아니라 기억되는 존재로 남고 싶다는 바람이다. 이것은 죽음이 가까운 이들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는, 애초에 인간이 이야기 속에서 살고 이야기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끝내 자신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남기려는 존재, 곧 호모 나란스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단순히 이야기하는 존재가 아니라, 결국 자신의 삶 자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가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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