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묵상, 관상

많은 곳에서 세 말마디를 듣는다. 그러나 그 차이를 분명하게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국어사전의 해석을 바탕으로 풀어볼 때, 명상(瞑想/冥想, meditation)은 「고요히 눈을 감고 잡생각 없이 마음을 가라앉히거나,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주로 ‘나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묵상(默想, meditation)은 「말없이 마음속으로 생각에 잠기는 것. 종교적, 그리스도교적 맥락에서 하느님이나 진리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로 ‘나 자신’을 넘어 말씀을 통해 하느님을 향해 생각을 모으는 것이다. 관상(觀想, contemplation)은 「그리스도교에서 마음을 집중하여 진리나 하느님의 현존을 바라보는 것. 사색이나 묵상보다 더 고차원적이고 단순화된 영적 경지」이다.

이 말들이 그리스도교적 배경을 넘어서 여러 문화적 맥락 안에서도 다양하게 사용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굳이 단순화하여 정리해보자면 일반적으로 ‘명상은 자기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고, 묵상은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말씀을 통하여 하느님을 향하는 사유를 뜻한다. 위의 괄호 표기에서 보듯이 일반적으로 명상이나 묵상을 영어로 옮기면서는 구별 없이 ‘meditation’이라 표기한다. 그러나 묵상이나 관상은 그리스도교적 배경 안에서 특히 신학적·영성적 의미로 심화된 용어이다. 묵상은 하느님에 관한 생각이고, 관상은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의 현존을 누리는 것이다. 이러한 묵상과 관상은 가톨릭교회 안에서 단순한 성경 공부나 정보를 학습하는 것을 넘어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렉시오 디비나(읽기Lectio-묵상Meditatio-기도Oratio-관상Contemplatio)의 여정으로 구체화된다. (※더 읽기: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이러한 구분은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영성 안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께서는 <신애론> 제6권 제2부와 3부에서 이를 개념적으로 상세히 기술하고 있으며, <신심 생활 입문> 제2부 제1장~제9장에서 묵상의 실제를 정리한다.

「… 묵상이란 말은 성경에 가끔 사용되는 말인데, 좋은 감정이나 나쁜 감정을 낳게 하는데 적합한, 주의 깊은 생각을 되풀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 모든 묵상이 하나의 생각이지만 모든 생각이 묵상은 아니다.

… 봄이 오면 꿀벌은 여기저기 꽃을 찾아 날아다닌다. 정처 없이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날아다니는 것이다. 다만 오색 꽃들이 만발한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고 기분전환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꿀을 찾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꿀을 찾아내자 그것을 빨아가지고 둥지로 날라와 밀을 분리하여 그것으로써 꿀송이를 만들어 그 안에 꿀을 담고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예술적으로 조리한다. 묵상을 하는 경건한 영혼도 이와 같다. 이 영혼도 또한 현의에서 현의로 날아다닌다. 다만 정처 없이 날아다니는 것도 아니며, 그 신적 사물의 감탄스러운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를 위로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목적을 가지고 계획을 세워, 사랑 또는 어떤 하늘스런 감정의 동기를 찾아내기 위해서이다. 이를 찾아내자, 자기에게로 끌어당겨 완미하고 자기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것을 마음속에서 소화한 다음 그 진보에 가장 적합한 것을 따로 저장해두고 끝으로 유혹을 받을 때를 생각해서 결심을 한다.

… 기도도 신심의 꿀을 만들기 전까지는 묵상이라 하나, 신심의 꿀을 만들게 되면 관상으로 바뀐다. 왜냐하면 꿀벌이 그 근처의 경치를 날아다니면서 여기저기 찾아다녀 꿀을 모으고 모은 다음에는 그 단맛에서 생기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하듯이, 우리도 하느님의 사랑을 모으기 위해서 묵상하고 하느님의 선량함을 자세히 상기하여 사랑이 거기서 찾아내게 하는 즐거움을 맛보는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얻어 가지려는 원의는 우리를 묵상케 하는데, 획득한 그 사랑은 우리를 관상케 한다.(신애론, 제6권 제2장, 제3장에서 부분 발췌)」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이 대목에서 “모든 묵상이 하나의 생각이지만 모든 생각이 묵상은 아니다”라고 단언하면서, 하느님 사랑의 단 꿀을 모으러 다니는 정신적 활동을 묵상이라 하고, 그 꿀을 맛보는 상태를 관상이라고 비유한다.

한편,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신심 생활 입문> 제2부, 제2장~제7장에서 관상에 앞서 묵상 방법의 실제를 가르치면서 준비, 상상, 성찰, 결심, 마무리(영적 꽃다발)라는 다섯 단계를 구체적으로 거론한다.

성인은 묵상하는 이는 무엇보다도 먼저 묵상을 위한 준비로서 하느님의 대전에 있음을 생각할 것이며,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라고 권고한다. 하느님께서 어느 곳에나 계시다는 것을 철저히 인식하고 하느님께서 지금 내가 있는 곳에, 특히 나의 마음과 영혼 깊은 곳에 계심을 명심하는 것이다.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고 계심을 묵상하고, 인성을 취하신 구세주께서 그대 옆에 계시는 모습을 그려 보는 것이다. 그리고 존엄하신 하느님 앞에 나아가기에 부당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준비를 마치면, 다음 단계인 ‘신비 떠올리기’ 혹은 ‘특정 장면 재현하기’라고도 하는 묵상의 단계로 넘어간다. 묵상하려는 신비가 실제로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상상하는 것을 말한다.

다음 단계는 하느님과 영적인 세계에 대해 묵상하는 것으로, 이른바 성찰의 단계로 넘어간다. 묵상은 단순한 연구나 사색에 머무르지 않는다. 연구나 사색은 지식을 얻거나 토론 또는 연구 발표를 하는 것이 목적인 반면, 묵상은 하느님의 사랑을 얻거나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적이다.

물질적인 것을 묵상할 때에는 상상력을 이용하지만, 영적인 것을 묵상할 때에는 생각이나 성찰을 형상화하거나 정신을 묵상 주제에 집중시킨 뒤 이를 성찰한다. 꿀벌들이 꿀이 남아 있는 한 다른 꽃으로 옮겨 가지 않는 것처럼, 한 가지 성찰에 집중하게 되거나 그 성찰이 유익하다는 판단이 서면, 다른 것을 성찰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력을 했음에도 한 가지 성찰에 집중할 수 없으면 초조해하지 말고 차분하게 다른 것에 대해 성찰할 수 있다.

상상과 성찰의 단계를 넘어 결심이라는 묵상의 단계로 넘어간다. 결심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결심이다. 예를 들면, 이웃 사람들이나 가족에게 나를 무시하고 불쾌한 말이나 행동을 해도 괜찮다고 말해 줌으로써 그들을 안심시켜 주겠다는 등의 결심을 말한다.

묵상의 다섯 번째 단계는 마무리와 영적 꽃다발의 단계이다. 첫째는 감동을 느끼고 결심하게 해 주신 것과 묵상 중에 깨달은 주님의 자비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둘째는 선하심과 자비하심, 아드님의 죽으심과 공로에 화합하는 그대의 결심을 하느님께 봉헌한다. 셋째는 당신 아드님의 죽으심의 공로를 나누어 주시기를 간구하고, 그대의 결심에 축복하시어 이를 실천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청한다. 또한 거룩한 교회와 성직자들과 친척과 친지들, 그 밖에 여러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특히 모든 신자에게 필요한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바친다. 마지막으로 작은 영적 꽃다발을 만든다.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정원을 산책하다가 떠날 때 사람들은 꽃을 몇 송이라도 꺾어 그 향기를 종일 맡고 싶어 하듯이 묵상의 정원에 있는 꽃 두세 송이로 꽃다발을 만들어 주님께 바치는 것이다. 어떤 신비에 대해 묵상했으면 그중 내가 감동한 것을 성찰하고, 묵상했던 것 중에서 나의 관심을 끌었거나 나에게 유익한 두세 가지를 택하여 그날 하루 내내 기억하며 그 영적 향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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