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 여성들에게 보내는 편지

※ 아래는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세계 여성대회를 앞두고 당시 교황이셨던 성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전 세계의 여성들에게 보내는 편지 중 제2항의 일부분이다. 이 대목만으로도 한편의 아름다운 글이다. 교황님의 글 전체를 읽고 싶은 이들을 위하여 교황 교서 전체의 번역본을 주교회의(CBCK) 홈페이지에서 가져와 뒷부분에 수록한다. *** 「 … ‘어머니인 여성들에게’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은 여성만이 아는 기쁨과 산고를

예수님과 어린이(파이디온, παιδίον)

신약성경 공관복음서에는 ‘어린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마태 18-19장, 마르 9-10장, 루카 9장·18장)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는 파이디온(παιδίον)으로, 주로 어린아이, 유아를 가리키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는 가정의 중심이며 가장 귀하게 보호받는 존재이다. 사랑과 관심은 자연스럽게 어린이에게 모이고, 어린이는 순수함과 희망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의 사회적 현실은 오늘과 크게 달랐다. 어린이는 아직 독립된 인격체라기보다 보호와 양육의 대상이었으며,

어떤 젊은이와 예수님

한 젊은이가 예수님을 따르고 싶어 다가온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조건을 묻는다. 예수님께 다가온 태도도 좋았고, 영원한 생명을 향한 지향도 훌륭했으며, 그 길을 예수님께 물었다는 점도 아름다웠다. 그는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하고 여쭙는다. 착한 일을 쌓고 또 쌓아야 영원한 생명을 획득할 수 있다는 생각에 따라 자기 방식대로 물은 것이다. 아직 미성숙했던 그로서는

망설임 없이

주님께서는 당신을 향한 믿음이 부족했던 성 베드로를 꾸짖으셨습니다. … 안타깝게도 수많은 영혼이 저지르고 있는 이 잘못에 대해, 예수님 외에 그 누가 감히 베드로를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셨다면, 그분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은총을 이미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분께서 “오너라” 하고 말씀하신 바로 그 순간, 그 일을 할 수 있는 은총은 이미 주어진

은총의 옷자락

“대대로 옷자락에 술을 만들고 그 옷자락 술에 자주색 끈을 달게 하여라. 그리하여 너희가 그것을 볼 때마다, 주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실천하고, 너희 마음이나 눈이 쏠리는 것, 곧 너희를 배신으로 이끄는 것에 끌리지 않도록 하는 술이 되게 하여라. 그래서 너희는 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실천하여, 너희 하느님에게 거룩한 사람들이 되어라.”(민수 15,38-40) 이 말씀에 따라 유다인에게 옷자락은

용서容恕

제자 자공子貢이 스승 공자에게 평생 간직할 만한 한 글자를 청하자, 공자는 ‘용서할 서(恕)’를 일러주었다고 한다. ‘용서’는 동양의 고전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어휘이기도 하다. 구약을 넘어 신약에 이르기까지, 용서는 인간과 하느님, 그리고 인간 상호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중심 개념으로 자리한다. 신약성경에서 ‘용서’는 대체로 세 가지 어휘로 드러난다. 먼저 「ἀφίημι(아피에미)」는 빚이나 죄를 면제해 주고 더

듣다(아쿠오, ἀκούω)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를 묻는 제자들에게 이사야 6,9-10을 인용하시며 그 뜻을 설명해 주신다.(마태 13,10-17 참조) 이 대목에서는 ‘듣다(ἀκούω)’라는 동사가 여러 번 반복된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들음’을 묵상하기에 매우 중요한 장면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들음’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 행위가 아니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말씀에 순종하는 태도이다. 사람들은 들을 내용이 없어서가 아니라, 들으려는 마음이 없어서

표징(세메이온, σημεῖον)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확인해 주신 분이십니다.”(사도 2,22)는 구절은 신약성경에서 ‘기적’, ‘이적’, ‘표징’이 함께 등장하는 대표적인 본문이다. 신약성경의 원어인 그리스어에서는 이를 각각 δυνάμεσι(← δύναμις, dynamis), τέρασι(← τέρας, teras), σημείοις(← σημεῖον, sēmeion)로 표현하며, 영어 성경에서는 이를 miracles, wonders, signs로 옮긴다. 이 세 용어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면서도 강조점이 다르다. ‘뒤나미스’는 사건 안에서

자비(엘레오스, Ἔλεος)

예수님께서는 호세아서 6장 6절을 인용하시며 “나는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를 원한다”(마태 9,13;12,7)고 말씀하신다. 이 구절은 마태오 복음에서 두 차례 반복된다. ‘자비’라는 말은 공관복음에 주로 등장하며, 특히 마태오와 루카 복음에서 두드러진다. 요한복음에서는 이 표현이 직접 나오기보다 ‘사랑’이라는 말로 그 의미가 드러난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맥락은 분명하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시기하고 트집 잡으려 할 때였다. 마태오 9장에서는

손을 대다(합토마이, ἅπτομαι)

마태오 복음 9,18-26에서 회당장은 예수님께 “손을 얹어” 딸을 살려주시기를 청한다. 한편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그분의 옷자락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나을 것이라 믿고 다가가 실제로 그 옷자락에 “손을 댄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죽은 소녀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어 다시 살리신다. 이 짧은 이야기 안에는 ‘손을 댐’, 곧 접촉이라는 행위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여기서 “손을 대다”라는 표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