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쉬케, συκῆ)

성경은 무화과 열매보다 무화과나무 자체를 더 자주 이야기한다. 그 나무는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를 비추는 하나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구약의 언어인 히브리어에서는 열매와 나무를 구별하지 않고 ‘테에나(תְּאֵנָה, te’enah)’라는 단어 하나로 둘 다를 가리킨다. 반면 신약성경의 언어인 헬라어에서는 열매를 ‘쉬콘(σῦκον)’, 나무를 ‘쉬케(συκῆ)’라 불러 명확히 구분한다.
무화과나무는 창세기에 처음 등장한다.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는 눈이 열려 자신들이 알몸임을 깨닫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었다.(창세 3,7 참조) 이처럼 무화과나무는 인간 주변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나무이자, 인간이 자신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가장 먼저 손에 잡은 나무였다.
이후 무화과나무는 포도나무와 함께 ‘풍요와 안식, 평화와 안전’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솔로몬 치하에서 태평성대를 누리던 백성들은 저마다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마음 놓고 살았고(1열왕 5,5 참조), 저마다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으며 평화를 누렸다.(2열왕 18,31 참조)
나아가 무화과나무는 메시아 시대의 도래와 새로운 출애굽으로 완성될 평화를 예고하는 표지였다. 예언자들은 메시아의 날이 오면 “사람마다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아 쉬리라. 그들을 위협할 자 아무도 없으리라”(미카 4,4 즈카 3,10 참조)라고 선언했다.
다른 한편으로 무화과나무는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과 그 영적 상태’를 상징하기도 한다. 시편과 예언서에서 무화과나무가 박해를 받아 ‘치이고 죽거나’(시편 78,47;105,33 참조), 열매가 시들고(이사 34,4 요엘 1,12 참조), 황량하게 짓밟히는 모습(예레 5,17 호세 2,14 참조)으로 묘사될 때, 이는 곧 하느님을 떠나 시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처지를 대변한다.
이처럼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민족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의 터전이자, 그들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거룩한 은유였다. 이러한 상징성은 신약성경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야고보 사도는 “무화과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내고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낼 수 있습니까?”(야고 3,12)라며 존재의 본질을 역설했고, 요한묵시록은 “하늘의 별들은 무화과나무가 거센 바람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듯이 땅으로 떨어졌다”(묵시 6,13)라며 마지막 때의 심판을 묘사했다.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잎만 무성하다가 예수님께 꾸지람을 들었던 무화과나무(마태 21,19-20; 마르 11,13-21 참조)는 회개하지 않는 자의 끝을 경고하는 표징이며,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때와 절기를 분별하는 시대의 표징이 된다.(마태 24,32; 마르 13,28; 루카 21,29 참조) 특히 마르코 복음에서는 무화과나무 이야기가 성전 정화 사건을 감싸듯 배치되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잃은 성전과 하느님 백성 전체를 상징하는 예언자적 표징이 된다.
또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꼭 알고 싶었던 키 작은 자캐오가 간절한 마음으로 올라갔던 나무 역시 돌무화과나무(συκομορέα, 루카 19,4 참조)였다. 이처럼 무화과나무는 간절한 갈망의 나무이며, 부르심의 나무이고, 마침내 새로운 삶으로 이끄는 나무가 된다.
예수님께서는 유다교 전승에서 율법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장소로 이해되기도 하는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던 나타나엘을 향해 “내가 너를 보았다”(요한 1,48)라고 말씀하셨다. 이 한마디에 나타나엘의 마음이 열렸고, 그는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요한 1,49)라는 위대한 고백을 바쳤다.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으셨다. 그것은 한 그루의 나무에서 열매를 찾으신 것이 아니라, 당신 백성 안에서 믿음의 열매를 찾으신 것이었다. 열매 없는 나무에 대한 심판은 결국 열매 없는 신앙에 대한 경고였다.
결국 성경의 무화과나무는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이며, 하느님께서 인간을 기다리시는 자리이다. 그 나무 아래에서 인간은 자신의 수치를 가리기도 하고, 평화를 누리기도 하며, 심판을 받기도 하고, 다시 부르심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무화과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다. 인간의 수치와 회개, 평화와 심판, 부르심과 믿음이 한데 만나는 자리이며, 끝내 회복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품은 성경의 나무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