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일 ‘가’해(마태 16,21-27)

오늘 말씀의 전례는 우리 삶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 앞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나는 지금 당장 눈앞에 놓인 ‘사람의 일’(세상)만을 안절부절못하며 좇고 있는가, 아니면 어떠한 순간에도 ‘하느님의 일’(사랑)을 선택하려 하는가?”

오늘 1독서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세상의 조롱과 치욕의 대상이 되어 극심한 괴로움을 겪는다. 그러나 그 고통의 한복판에서도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타오르는 불이 되어”(예레 20,9) 결코 하느님을 외면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2독서의 바오로 사도 역시 “이 세상에 맞추어 살지 말고 마음을 새로이 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분별하라”(로마 12,2)고 권고하며, 우리 자신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산 제물’로 바치라고 호소한다. 세상의 거센 흐름에 동화되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길은, 이처럼 치열한 내적 투쟁과 거룩한 변화를 요구한다.

오늘 복음은 지난 주일 복음에 바로 이어지는 ‘2부’인 셈이다. 지난주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로 고백(신성神聖)하며 거룩한 ‘반석’이라는 칭호를 받았다면, 이번 주에는 예수님이 겪으셔야 할 수난과 죽음의 신비(인성人性) 앞에 서게 되면서 그 길을 막아서려다가 “사탄”으로 전락하고 만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본래 사명, 곧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제자들에게 비로소 “밝히기 시작”하신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가혹한 현실을 수용할 수 없었다. 그는 감히 예수님을 “붙들고 반박하며” 스승의 길을 막아서려 시도한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보다 자신의 인간적인 타산과 주도권을 앞세운 것이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하고 준엄하게 꾸짖으신다. 스승의 앞을 막아서는 ‘걸림돌(사탄)’이 되지 말고, 스승의 뒤를 겸손히 따르는 참된 ‘제자의 자리’로 돌아오라는 단호한 명령이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참된 따름의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하신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라.”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단순한 자기 비하나 열등감이 아니다. 이기적이고 작은 자아를 내려놓음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나를 발견하는 더 큰 해방이자 자유이다. “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나에게 찾아온 고통을 어쩔 수 없이 참아내는 피학적인 체념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짊어지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사랑의 멍에’이다.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가난하고 약한 이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삶, 곧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겪는 모든 희생이 바로 십자가다. “나를 따라라” 하심은 고통의 길로 걸어 들어가는 절망으로의 초대가 아니라, 충만한 삶과 참된 자유를 향해 나아가며, 나를 잃음으로써 영원히 얻게 되는 역설적인 희망의 길로 들어서라는 부르심이다.

우리는 흔히 ‘하느님의 뜻’을 말할 때,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나 악, 불의’와 연결 짓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고통을 무릅쓰고서라도 지켜내야 할 ‘선과 정의, 그리고 극진한 사랑’이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신 이유 역시 고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끝없는 연대와 ‘사랑의 의무’를 완수하시기 위함이었다.

오늘 복음에는 “목숨”이라는 단어가 여섯 번이나 반복되며 ‘잃다’, ‘구하다’, ‘얻다’라는 동사가 쉴 새 없이 교차한다. 오늘 우리가 던져야 할 참된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당장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 목숨을 구하려다 진짜 생명을 잃어가고 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 나를 내어놓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고 있는가?”

수난과 죽음을 거쳐 부활에 이르신 예수님의 길을 말없이 신뢰하며 함께 걸으셨던 성모님, 저희 역시 세상의 논리에 동화되지 않고 일상 속에서 담대히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따라 걷도록 저희를 위해 빌어주소서. 아멘!

***

– 내 뜻과 계획대로 하느님이 움직이시기를 바라며, 하느님을 붙들고 반박하고 싶었던 순간은 언제였는가?

– 예수님을 제대로 따르기 위해 오늘 내가 내려놓아야 할 ‘자아(버릴 것)’와, 사랑 때문에 기꺼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무엇인가?

– 복음에서 거듭 강조되는 ‘목숨’은, 지금 내 삶에서 내가 가장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있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 눈앞의 작은 이익을 얻기 위해, 더 소중한 영적 가치와 신앙의 기쁨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마태 16,21-27(연중 제22주일 ) 2023

답글 남기기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
*

이 사이트는 Akismet을 사용하여 스팸을 줄입니다. 댓글 데이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