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6주일 ‘가’해(마태 21,28-32)

오늘 말씀의 전례는 한 가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하느님의 뜻을 안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그 뜻을 살아가는 것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한가? 제1독서의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라”는 말씀은 복음의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는 말씀과 연결되고, 제1독서의 “주님의 길”과 “공정과 정의의 실천”은 복음의 “아버지의 뜻”과 “의로운 길”로 이어진다. 그리고 제2독서는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의 해인 1984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우리 순교자들 가운데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와 평신도인 정하상 바오로를 비롯하여 103명의 시성 미사를 집전하셨다. 30년 뒤인 2014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신 교황 프란치스코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4위 순교자들의 시복 미사를 집전하셨다. 오늘 대축일을 기리며 복음강해를 대신하여 이 시성·시복 미사를 통해 들었던

연중 제24주일 ‘가’해(마태 18,21-35)

“카인을 해친 자가 일곱 곱절로 앙갚음을 받는다면 라멕을 해친 자는 일흔일곱 곱절로 앙갚음을 받는다.”(창세 4,24)라는 라멕의 선언처럼, 피의 보복을 무한대로 이어가던 구약의 옛 전통은 시대가 흐르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태보복법으로 다소 완화되었다. 그러나 이는 폭력의 악순환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을 뿐, 참된 용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모세 율법은 주로 공동체 안에서의 용서를 강조하였고, 예수님 시대의

연중 제23주일 ‘가’해(마태 18,15-20)

오늘 말씀의 전례는 공동체 안에서 죄와 허물에 빠진 형제자매를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지 가르쳐준다. (*형제의 허물 앞에서 선 나의 태도: ① 회피·직면 ② 비방과 험담·적대감 ③ 형제를 얻으려는 간절함) ※ 함께 읽기: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삼종기도 훈화 –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오늘 제1독서(에제 33,7-9)에서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를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으로 세우신다. 악인이 죄를 지을 때 그에게

연중 제22주일 ‘가’해(마태 16,21-27)

오늘 말씀의 전례는 우리 삶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 앞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나는 지금 당장 눈앞에 놓인 ‘사람의 일’(세상)만을 안절부절못하며 좇고 있는가, 아니면 어떠한 순간에도 ‘하느님의 일’(사랑)을 선택하려 하는가?” (*열쇳말: ① 사람의 일·하느님의 일 ② 자기를 버림·십자가 지기·예수님 뒤를 따름 ③ 목숨: 잃다·구하다·얻다) 오늘 제1독서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세상의 조롱과 치욕의 대상이 되어 극심한

연중 제21주일 ‘가’해(마태 16,13-20)

오늘 말씀의 전례에서 듣는 말씀들은 ‘열쇠’라는 이미지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제1독서에서는 엘야킴에게 “다윗 집안의 열쇠”가 맡겨지고,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고 말씀하신다. 제2독서는 ‘열쇠’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인간에게 맡겨진 모든 권한과 사명의 궁극적인 근원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밝혀준다.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가기” 때문이다. 제1독서(이사 22,19-23)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히즈키야 임금 시대에

연중 제20주일 ‘가’해(마태 15,21-28)

오늘 말씀의 전례는 한 가지 분명한 진리를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곧, 하느님께서는 유다인이든 이방인이든, 선인이든 악인이든 당신께 나아오는 이라면 모든 이에게 구원을 베푸신다는 사실이다. 4복음서에는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하시며 예수님께서 특별히 믿음을 칭찬하신 장면들이 등장한다. 카파르나움의 백인대장(마태 8,10), 죄 많은 여인(루카 7,50), 하혈병을 앓던

성모 승천 대축일(루카 1,39-56)

1950년 비오 12세 교황에 의해 믿을 교리로 선포된 성모님의 승천은 하느님의 영광속으로 들어가시는 성모님을 바라보며, 모든 이가 도달해야 하는 삶의 최종 목적지에 시선을 고정하게 되는 축일이다. 승천하신 성모님은 인류의 운명을 보여주는 예표이다. 성모님의 승천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초대 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전승에 따른 것이다. 대축일에 관한 묵상, 가톨릭교회교리서의 가르침, 성 바오로 6세 교황의 <성모

연중 제19주일 ‘가’해(마태 14,22-33)

오늘 말씀의 전례는 인간의 두려움과 그 두려움 앞에 다가오시는 주님의 예상치 못한 현존,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놓칠 수 없는 주님의 사랑, 그 주님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하나로 보여준다. 제1독서(1열왕 19,9ㄱ.11-13ㄱ): 기원전 9세기의 엘리야는 바알 예언자들을 상대로 갈멜 산에서 승리한 이후 오히려 죽음의 위협을 맞고, 광야로 도망쳐 동굴에 숨는다. 극도의 탈진과 두려움 속에서 그는

연중 제18주일 ‘가’해(마태 14,13-21)

오늘 말씀의 전례는 유배지에서 안주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약속하는 이사야(제1독서), 그 사랑의 확증이신 예수 그리스도(제2독서), 그리고 그 사랑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빵과 물고기의 기적(복음)으로 이루어진다. 이 기적은 네 복음서가 모두 전하는 핵심 사건(마태 14,13-21 마르 6,32-44 루카 9,10-17 요한 6,1-15)으로, 성체성사 안에서 오늘 우리에게 현재화된다. 제1독서(이사 55,1-3)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유배지의 백성들에게 모든 이를 배불릴 ‘공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