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기억(La memoria del futuro)

우리에게는 꿈 하나가 있습니다. 그 꿈은 우리의 위대한 자산입니다. (*총장 앙헬 페르난데즈 아르티메 추기경, 살레시오 가족지 이탈리아어판, 2023년 11월호)

200년 전 가난해서 시골 농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어린 소년이 꿈 하나를 꾸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소년은 자기 어머니와 할머니, 형들에게 그 꿈 이야기를 했고 식구들은 재미있어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신경 쓸 것 없다.”라며 결론을 지으셨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그때의 그 소년은 “저로서는 그때 할머니와 생각이 같았습니다만, 그 꿈을 도저히 제 마음에서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기록했습니다. 그 꿈이 누구나 꾸는 그런 꿈이 아니었고 아침이 오면서 사라지는 꿈도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꿈은 강력하게 요한 보스코의 마음을 사로잡아 거듭거듭 되풀이되었습니다. 과연 그 꿈은 요한 보스코에게 기쁨에 찬 확신과 지칠 줄 모르는 힘의 원천이었으며 삶의 원천이었습니다.

돈 보스코의 시복 조사 중 교구 심사에서 그의 첫 번째 후계자였던 루아 신부는 “요한 보스코가 자주 찾았던 형제들의 가족인 루치아 투르코가 어느 날 아침 평상시보다는 훨씬 기쁜 표정으로 요한 보스코가 온 것을 보았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그녀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요한 보스코는 전날 밤에 꿈을 꾸게 되어서 무척 기쁘다고 말했답니다. 무슨 꿈이었느냐고 물었더니 요한 보스코는 꿈에 어떤 여인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녀의 뒤에 엄청나게 많은 양 떼가 뒤따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인이 그에게 다가와서 자기 이름을 부르면서 ‘요한아 보아라! 이 모든 무리를 네게 맡긴다.’ 하였고, 이에 요한이 ‘저더러 어떻게 그렇게 많은 양을 돌보라는 말씀이죠? 그렇게 많은 양을 먹일 풀밭이 어디 있겠어요?’라고 대답하자 여인은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도와줄게.’라고 말씀하시면서 사라지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그 순간부터 사제가 되기 위해 공부해야겠다는 요한 보스코의 열망은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그러나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자기처럼 들판에서 농사나 지으라고 하는 안토니오 이복형과 같은 심각한 어려움이 그의 앞길을 막았습니다. 사실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였으나 예수님의 명령은 중차대한 것이었고, 우리 성모님의 도움은 확실히 감미로운 것이었습니다.

돈 보스코의 전기를 최초로 집필하기 시작했던 레뮈엔 신부는 그 꿈을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요한 보스코에게는 눈부시게 빛나는 흰옷을 입으신 구세주께서 헤아릴 수 없는 청소년을 인도하고 계시는 것을 본 듯했습니다. 그분께서는 요한에게 돌아서시어 ‘이리로 와서 이 아이들의 선두에 서서 이들을 이끌어주렴.’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할 수 없습니다.’하고 요한이 대답하자, 구세주께서는 요한이 그 수많은 애들의 선두에 서서 명령받은 대로 그들을 인도할 때까지 줄기차게 고집하셨습니다.” 신학교에서 돈 보스코는 교황님께서 후손들을 위해서 그 꿈을 기록하라고 명령하셨다는 사실을 무척 겸손하게 밝히면서 이를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돈 보스코는 “이제 이러한 내용은 어디에 소용될까요? 과거를 교훈 삼아 미래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매 순간 모든 것을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아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회상, 34쪽) 모리알도의 꿈은 저에게 강한 인상으로 남았습니다. 그 꿈은 다른 기회에 점점 더 분명해졌습니다. 제가 그 꿈을 믿고자 하면 저는 제가 강하게 끌리는 사제직을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꿈들을 믿고 싶지 않았으며 제가 살아가는 모습이나 사제로 사는 삶에 걸맞은 덕이 제게는 부족한 상태였으므로 사제직을 선택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고 조심스러웠습니다.”라고 기록합니다.

우리는 요한 보스코가 주님과 그분의 어머니를 알아보았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겸손한 그의 필치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천상을 방문했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었습니다. 요한 보스코는 이러한 꿈속의 천상 방문들이 그 자신의 미래와 자기의 사목을 계시하는 것이었다는 사실도 물론 의심하지 않았었습니다. 돈 보스코는 “초자연적인 사실이 저에게 조언하지 않는 한 살레시오회는 그 어떤 걸음도 뗀 적이 없습니다. 주님으로부터 특별한 명령이 없이는 이처럼 살레시오회가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 역사를 세세한 것까지도 미리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술회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살레시오회의 회헌이 “우리는 겸허한 감사의 정으로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회가 단지 인간적인 계획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생겨났음을 믿는다.(제1조)”라는 신앙고백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돈 보스코의 유언

교황님께서 돈 보스코에게 아들들을 위하여 꿈들을 기록하라고 명령하시자 돈 보스코는 “이 글은 어디에 소용될까요? 과거를 교훈삼아 미래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매 순간 모든 것을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아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내가 나의 생애를 셈 바치기 위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저세상으로 떠나게 되면, 나의 아들들은 자기 아버지에 관한 글을 아주 기쁘게 읽을 것입니다. 혹시 내가 너무 허세를 부리거나 자만하는 기색이 엿보이거든 너그럽게 눈감아 주십시오. 나는 내 일들을 자식들에게 즐겨 말하는 아버지입니다. 아들들 역시 자기들을 무척 사랑했고, 크고 작은 일들 안에서 언제나 그들의 영적 및 물질적인 선에 마음 썼던 아버지의 작은 모험담을 읽고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회상, 34쪽)라고 머리말을 씁니다.

돈 보스코는 자기의 회고록을 읽는 이들이 자기가 써 내려가는 이야기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계속할 수밖에 없도록 이끌려온 자신의 이야기와 모험에 독자들이 참여하도록 하려 한다는 의도를 분명히 밝힙니다. 그런 의미에서 돈 보스코의 꿈 이야기는 돈 보스코의 “유언”이 됩니다.

여기에 그의 사명이 있습니다: 가장 작은 이(più piccoli)로부터, 가장 어린 애들(più giovani)로부터, 가장 버림받은 이들(più abbandonati)로부터 시작하는 세상의 변화입니다. 여기에 그의 방법이 있습니다: 선함(la bontà), 존중(il rispetto), 인내(la pazienza)입니다. 여기에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강력하고 확실한 보호, 성모님의 부드럽고 모성적인 보호가 있습니다.

1824년 아홉 살 꿈이 있고 난 뒤 많은 세월이 지나서 돈 보스코는 회고록에서 다른 꿈이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1844년 10월 12일이었다. 나는 소년들에게 오라토리오를 옮겨야만 한다고 말을 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어디에 어떻게 모아야 할지 누가 나를 따르고 누가 나를 떠나가게 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 불확실함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저녁에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밤에 나는 또다시 꿈을 꾸었다. 아홉 살 때 베키에서 꾸었던 꿈의 연속인 듯했다. 나는 꿈속에서 늑대와 염소, 염소 새끼, 어린양과 양, 숫양, 개들, 새 떼 틈에 있었다. 그것들은 일제히 시끄러운 소리를, 아니 아주 담력이 센 사람들도 기겁할 만큼 무시무시한 괴성들을 지르고 있었다. 나는 도망을 치고 싶었지만, 목자의 차림을 한 한 부인이 앞장을 서면서 그 이상한 짐승 떼를 따라가라고 손짓을 했다. 우리는 여러 곳을 지나가면서 세 번 멈추었다. 그때마다 그 짐승들은 양으로 변했다. 이리하여 양들의 수효는 더욱더 불어났다. 한참 걷고 나니 풀밭이 나왔다. 그곳에서 짐승들은 껑충껑충 뛰어다니고, 서로 사이좋게 풀을 뜯어 먹었다.

나는 기진맥진하여 길가에 주저앉고 싶었지만, 목자는 내게 계속 걸어가라고 했다. 마지막 길을 얼마나 더 걷고 나니 회랑으로 둘러싸인 마당이 나왔고(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오라토리오) 그 끝 쪽에 성당이 보였다. 양들의 수효는 아주 크게 불어나 있었다. 그 순간 많은 목자가 그 양들을 돌보러 왔다. 그러나 그들은 오래 머물지 않고 곧 가버렸다. 그때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많은 양이 작은 목자들로 변하여 다른 양떼를 돌보고 있는 게 아닌가!(오라토리오 젊은이들로부터 나온 첫 살레시오 회원들) 어린 목자들의 수효는 점점 더 불어났다. 그러자 그들은 다른 이상한 동물들을 모아 안전한 우리로 인도하기 위해 여러 무리로 나뉘어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토리노와 피에몬테, 이탈리아 밖의 설립)

나는 미사를 드리기 위해 돌아가려고 했지만, 부인은 내게 남쪽을 보라고 했다. 내가 눈을 들어 그쪽을 바라보니, 옥수수와 감자, 양배추, 비트, 상추와 다른 여러 채소가 심어진 밭이 보였다.(이 꿈과 계속되는 꿈으로 인해 훗날 ‘꿈들의 밭’이라고 불렀다) 부인은 ‘다시 한번 바라보아라.’하고 말했다. 그곳에서 나는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성당을 보았다. 오케스트라가 연주되고 합창이 울려 퍼질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미사에 초대되었다. 성당 안에는 하얀 띠가 드리워져 있었고 그 위에는 큰 글자로 ‘Hic domus mea, inde gloria mea’(여기는 나의 집, 여기서 나의 영광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꿈속에서 나는 계속 목자에게 내가 어디 있으며, 그 걸음과 멈춤, 그 집과 첫 번째 성당 그리고 두 번째 성당이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여쭈어보았다. 부인은 대답했다. ‘지금 네가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을 육안으로 보게 될 때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깨어 있다고 생각하고 말했다. ‘이미 저는 제 육신의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는걸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겠습니다.’ 그 순간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서 삼종기도 종소리가 울려 퍼졌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 꿈은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여기에 기록하지 않은 다른 세세한 것들도 보았다. 그 당시 나는 꿈에 본 것을 그리 믿지 않았고, 그 의미도 별로 깨닫지 못했으나 사건들이 차차 확인되어 감에 따라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이 꿈과 다른 꿈은 내 결정들의 지침이 되었다.)”(회상, 205-209쪽)

이러한 이유로 우리가 도움이신 마리아 대성당에 들어설 때, 우리는 당신의 꿈이 우리의 꿈이 되기를 요청하는 돈 보스코의 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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