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과 교황의 만남

몽골 방문을 시작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9월 1일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전통 의상을 입은 어린이와 인사하고 있다. /로이터 뉴스1

2023년 9월 1일부터 교황 프란치스코는 4박 5일의 일정으로 몽골을 방문하였다. 이는 2천 년 가톨릭교회의 역사에서 교회의 수장으로서는 역사적인 첫 방문이었다. 신자 수 1천 5백이 채 안 되며 몽골 현지인으로서는 2명의 사제밖에 없는 상황에서 교황의 방문은 그 의미가 사뭇 깊다.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에 앞서 8백 년쯤 전 유럽 대륙은 전혀 알지 못하던 동양의 몽골인들을 엉뚱한 상황에서 맞닥뜨려야만 했고, 유럽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교황님께서는 당시 사절을 보내 화친을 도모해야만 했었다. 이른바 ‘몽골 제국의 유럽 원정’이다. 「몽골 제국군은 동유럽에서 볼가강 불가리아, 쿠마니아(Cumania), 알라니야, 키예프 루스국들을 모두 정복했고, 중앙 유럽에서 분할된 폴란드의 공국들까지 침공하기 시작했으며, 1241년 4월 9일 레그니차 전투와 1241년 4월 11일 모히 전투에서 헝가리 왕국과 전투를 벌이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몽골의 유럽 습격과 원정은 13세기 후반까지 계속되었다.(위키백과)」 *아래의 글은 살레시오회 서정관 수사의 소개임

마지오네Magione 시市에서 발행한 ‘몽골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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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회 교황청과 몽골의 최초 만남은 180대 교황인 1245~1246년 교황 인노센트 4세와 귀위크 칸의 편지 교환을 말한다. 1230년대 후반, 몽골 군대는 러시아와 동유럽 일부를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1236년부터 1242년까지 수부타이(1248년 사망), 바투 칸(1255년 사망), 베르케(1266년 사망) 등이 지휘한 이 군사작전은 러시아, 폴란드, 헝가리, 발칸 반도 전역에 큰 피해를 줬다. 키예프, 페레야슬라블, 체르니히프, 루블린 등 동유럽과 중부 유럽의 주요 인구 밀집 지역이 약탈당하고 주민들이 학살당했다. 리에니츠/레그니차 전투(1241년 4월 9일)에서 폴란드군이 패배하고 모히 전투(1241년 4월 11일)에서 헝가리 군이 패배하면서 발칸 반도와 중부 유럽 대부분이 몽골군의 공격에 노출되었고, 더 많은 파괴와 난민, 학살이 발생했다. 이러한 놀라운 상황은 그리스도교의 근간을 흔들었다. 몽골은 제국 내부의 역학 관계로 인해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발칸 반도와 중부 유럽에서 철수했지만, 침략과 정복의 충격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정복자들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리스도교 국가에 대한 침략을 중단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교황 인노센트 4세(1243~1254년)는 몽골의 칸 귀위크에게 두 차례에 걸쳐 편지와 함께 사절단을 보냈다. 교황 특사는 1245년 4월 리옹을 출발해 1246년 7월 카라코룸 근처의 귀위크 칸 궁정에 도착하여 1246년 8월 말에서 9월 초 사이에 교황 인노센트 4세의 서한을 전달하였는데, 그는 프란체스코회 소속 조반니 다 피안 델 카르피네(Giovanni da Pian di Carpine, 1252년 사망)였다. 그는 1247년 말에 당시 몽골 제국 칸의 답신을 가지고 교황님이 계시던 리옹으로 돌아왔다. 수도자이자 탐험가인 카르피네는 그의 임무와 광범위한 여행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담긴 ‘스토리아 몽갈로룸(Historia Mongalorum)’을 집필했는데, 2023년 교황 프란치스코의 몽골 방문을 앞두고 카르피네 수사님의 고향인 마지오네Magione 시市에서는 이 책을 출간하여 교황님의 여정에 동반하도록 하였으며, 1246년 귀위크 칸의 고대 답신 인증 사본이 교황 방문 시 몽골 대통령에게 선물되기도 하였다.

인노센트 4세가 몽골의 칸에게 보낸 서신

귀위크 칸의 인노첸시오 4세에게 보낸 국서(페르시아어, 바티칸 도서관 소장)

 

 

 

인노센트 4세의 두 라틴어 편지는 모두 교황청 서간집(Epistolae Saeculi xiii e regestis Pontificarum Romananim selectae, t. ii, 102번과 105번, Monumenta Germaniae Historica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그에 대한 몽골 제국 칸의 1246년 답신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인의 황제이신 하느님의 권능으로 위대한 교황에게 이 편지를 보내는바, 이 편지는 완전히 진실하고 진실합니다. 우리에게 보내주신 대사를 통해 교황님의 말씀을 들었고 교황님의 편지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듯이, 교황님께서는 우리와 교황님 및 모든 그리스도인 사이에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에 대한 제안을 우리에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황과 모든 왕과 통치자들이 우리와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이루기 위해 나에게 오는 것을 조금도 지체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의지와 함께 우리의 대답을 듣게 될 것입니다.

편지의 본문에는 우리가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몇 마디로 우리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정말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대답합니다. 당신이 편지에서 언급한 다른 요점, 즉 특히 그리스도인, 특히 폴란드인, 모라비아인, 헝가리인에 대한 많은 학살에 놀랐다는 것과 관련하여, 우리도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같은 방식으로 답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완전히 간과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이나 징기스칸이나 칸(오고타이)의 계명에 순종하지 않았고, 큰 간계에 넘어가 우리 대사를 죽였기 때문에, 하느님은 그들을 전멸시키라고 명령하고 그들을 우리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게다가 하느님이 직접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자신들, 그리스도인이 전부라고 믿고, 다른 사람들을 멸시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누구에게 은총을 베푸시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는 하느님을 경배하며, 하느님의 강인함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 모든 땅을 정복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권능이 아니라면,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당신이 평화를 선택하고 우리에게 당신의 힘을 넘겨주려고 한다면, 교황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평화를 이루기 위해 나에게 오는 것을 조금도 지체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당신이 우리와 평화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하느님과 우리가 보내는 이 메시지를 믿지 않고 우리에게 오라는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당신이 우리와 전쟁을 원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 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우리는 알지 못하며 오직 하느님만이 아십니다.(징기스칸, 초대 황제 / 오고타이 칸, 2대 황제 / 귀위크 칸, 3대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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