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유香油 옥합玉盒

신약성경에는 어떤 여인이 옥합에 든 값비싼 향유로 예수님의 발이나 머리에 기름을 부어드리고 머리카락으로 닦아드렸으며 그에 따라 온 집안에 향기로움이 가득했다는 기록을 네 복음서가 모두 남긴다.

네 복음서는 각각 다른 맥락 안에서 이 복음을 기술한다. 마태오와 마르코는 내용과 팩트 면에서 거의 대동소이하다. 베타니아에 있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라는 장소와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는 평범한 듯한 “어떤 여자”라는 점, 그리고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까지 같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루카복음은 마태오나 마르코가 말한 “나병환자 시몬의 집”이 아닌 “바리사이 시몬의 집”이라 하고, 또 일반 여자가 아니라 “죄인인 여자”라고 여인을 특정하면서 그 여인이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루카 7,38) 하면서 마태오나 마르코와는 달리 예수님의 머리가 아닌 예수님의 발에 기름을 바르고 입을 맞추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요한복음은 마태오나 마르코처럼 베타니아라는 동네는 같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게 해주신 라자로의 집에서 라자로의 여동생 마리아(흔히 예수님을 만난 여인을 ‘일곱 마귀’에 사로잡혔던 – 참조. 마르 16,9 루카 8,2- 마리아 막달레나라고 여기지만, 실제 이름이 밝혀진 곳은 이곳의 ‘마리아’밖에 없다. 그리고 마리아가 ‘일곱 마귀’와 관련된 마리아 막달레나인지는 분명치 않다)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발라 드리고 루카복음처럼 머리카락으로 닦아드렸다 한다.

이렇게 약간 다른 배경이나 서술을 안고 있지만, 네 복음서 모두 공통으로 담는 내용은 그러한 여인의 행동을 두고 주변에 있던 이들이 이를 문제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마태오복음에서는 제자들이, 그리고 마르코복음에서는 “몇 사람이” 이를 “불쾌하게 여겼다”하고, 루카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러한 행동을 하는 “죄인인 여자”를 은근히 속으로 못 마땅해했다는 것이며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제자 중 공동체 살림을 맡고 있었던 유다가 여인의 행동을 두고 아예 드러내놓고 “말하면서” 불만을 제기하였다는 것이다. 루카복음은 그러한 행위의 주체인 여인이 죄인인 것을 두고 트집을 잡은 것이라 하지만 마태오, 마르코, 요한복음은 향유의 값어치가 허투루 쓰인다는 것에 대한 명분이 앞섰다 한다.

마태오, 마르코,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기름을 발라 주는 여인의 행위가 당신의 “장례”를 위한 사전 준비라고 하시는 점에서는 같다. 이와 달리 루카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행위에 속으로 불만을 품었던 바리사이 시몬에게 오백 데나리온과 오십 데나리온의 빚을 진 두 채무자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여인을 두둔하시는 한편 죄 많은 여인보다도 더 소홀하게 당신을 대접한 시몬을 나무라신다.

네 복음서에 전하는 값비싼 향유 사건(?)을 ‘하나’의 사건이라는 전제 아래 종합하자면, 예수님께서 어떤 이의 집에 계실 때 어떤 여인이 값나가는 향유를 들고 예수님께 다가와 예수님의 머리 아니면 발에, 적어도 예수님께 기름을 부어 발라 드렸으며, 주변에 있던 사람이나 제자들마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는데, 그 이유는 겉으로 값비싼 향유를 낭비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여인이 다른 사람들 보는 앞에서 예수님께 극진한 애정의 표현을 하는 것에 대한 시기나 질투, 혹은 불만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족히 스캔들이 될만한 그 사건을 옹호하시면서 그 사건이 무엇인가 장차 다가올 내용, 특히 당신의 죽음을 예견하는 준비나 예시인 것처럼 두둔하실 뿐만 아니라 그 여인의 행적이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기억될 것이라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비싼 향유를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쓰지 않고 낭비하는 듯이 비판하며 명분을 앞세우는 이들에게는 그러한 명분 뒤에 숨어서 엉뚱한 속내를 감추는 것에 대해서 오히려 경계하라는 듯이 말씀하신다. 덧붙여 루카복음에 따를 때, 여인의 행동은 큰 죄를 지은 이의 애절한 사랑의 몸짓에서 나온 믿음의 표현이었고 마침내 구원과 평안을 얻는 기회가 된다. 복음의 맥락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만나신 것은 바야흐로 지상의 여정이 끝나가던 시기였다. 여인을 만나신 예수님께서는 며칠 뒤 여인이 했던 것과 똑같은 몸짓으로 최후의 만찬에서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다. 그리고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요한 13,14) 하신다.

예수님을 예배하고 찬미하는 전례 안에는 예수님이 계시고, 그분 앞에 나아가는 인간이 있다. 인간은 자기가 지닌 것 중에서 가장 좋고 값진 것을 들고 예수님께 나아간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예수님 앞에 감히 설 수 없어 한없는 죄책감으로 눈물지으며 나의 가진 바를 깨트려 그분 앞에 내놓고 받아주십사 하고 마음과 몸을 다해 감히 그분의 발치에서 눈물로 그분의 발을 씻겨드리고 향香을 피우고자 한다. 물론 주변에서 우리의 그러한 행동을 비난하고 가증스럽다고 손가락질하거나 괴롭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행여 나에게 주어진 생애 동안 갑자기 그분께서 내 곁에 계시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라도 정성을 다해 그분께 기름을 부어드린다. 그러다 보면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을 모아 함께 드리는 예배와 찬미의 향기가 우리 주위에 가득함을 느낀다. 마침내 그렇게 구원을 얻고 평안을 얻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늘 있는 가난한 이들에게도 우리의 애덕의 향기를 나누며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여 그들도 예수님께 나아오도록 이끌기 위해 서로의 발을 씻는다.

‘그리스도’라는 말이 지닌 뜻 그대로 기름 부음을 받으신 그리스도께 다시 기름을 부어드리는 그리스도인의 예배 행위를 ‘전례’라 한다면, 향유를 매개로 한 예수님과 여인의 만남(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를 포함하여)에는 이처럼 전례의 모든 요소와 함께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사랑, 인간 간의 사랑, 그리고 인간을 위해 사제가 인간의 몸에 바르는 기름의 성사聖事(병자성사)까지 두루 담겼다.(*이미지-이탈리아어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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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26,6-13 : “예수님께서 베타니아에 있는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떤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다가와, 식탁에 앉아 계시는 그분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 제자들이 그것을 보고 불쾌해하며 말하였다. ‘왜 저렇게 허투루 쓰는가? 저것을 비싸게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을 터인데.’ 예수님께서 그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이 여자를 괴롭히느냐? 이 여자는 나에게 좋은 일을 하였다.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준비하려고 한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이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마르 14,3-9 : “예수님께서 베타니아에 있는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의 일이다. 마침 식탁에 앉아 계시는데, 어떤 여자가 값비싼 순 나르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그분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 몇 사람이 불쾌해하며 저희끼리 말하였다. ‘왜 저렇게 향유를 허투루 쓰는가?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을 터인데.’ 그러면서 그 여자를 나무랐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가만두어라. 왜 괴롭히느냐? 이 여자는 나에게 좋은 일을 하였다.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으니, 너희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들에게 잘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내 장례를 위하여 미리 내 몸에 향유를 바른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루카 7,36-50 : “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에 앉으셨다.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하였다.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그러자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요한 12,1-8 :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3 thoughts on “향유香油 옥합玉盒

  1. 내 명분과 고집에 빠져,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 반대로 소중한 것을 찾고 즉시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은총에 항상 감사기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

  2. 여인의 지극정성과 예수님의 대한 극진한 사랑으로 많은 죄를 용서 받았다. 시기,질투,분노,욕심과 탐욕 등으로부터 벗어난 맑고 깨끗한 영을 가진 여인인 듯 싶습니다. 저도 이 여인처럼 맑고 깨끗한 영을 가질 수 있을까요!. “하느님, 깨끗한 마음을 제게 만들어 주시고 굳건한 영을 제 안에 새롭게 하소서.” 아멘! (시편 51편 12)

  3. “여인의 행동은 큰 죄를 지은 이의 애절한 사랑의 몸짓에서 나온 믿음의 표현이었고 마침내 구원과 평안을 얻는 기회가 된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묵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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