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6주일 ‘가’해(마태 21,28-32)

오늘 말씀의 전례는 한 가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하느님의 뜻을 안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그 뜻을 살아가는 것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한가? 제1독서의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라”는 말씀은 복음의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는 말씀과 연결되고, 제1독서의 “주님의 길”과 “공정과 정의의 실천”은 복음의 “아버지의 뜻”과 “의로운 길”로 이어진다. 그리고 제2독서는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길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 함께 읽기: 비움·낮춤·높임 / 회개(메타노이아, μετανοία)

1독서(에제 18,2-28)에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악인이 자기 죄악에서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살 것이라고 선포한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느냐만이 아니다. 지금 ​돌아서는가, 그리고 돌아선 뒤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중요하다.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회개는 단순히 잘못을 후회하는 감정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2독서(필리 2,1-11)는 이러한 삶의 방향 전환을 가장 완전하게 보여주시는 분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앞에 세운다. 바오로 사도는 신자들에게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품으라고 권고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엄한 그리스도 찬가는 그 마음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자신을 낮추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드높이셨다.(필리 2,6-11 참조)

이 찬가에는 내려가심과 올라가심, 자기 비움과 높여짐, 순종과 영광​이라는 역설적인 움직임이 담겨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 역시 이 본문을 그리스도의 ‘내려감과 올라감’이라는 두 움직임으로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의 겸손과 순종이 결국 아버지께서 그분을 높이시는 길이 되었음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말로만 “예”라고 대답하는 삶이 아니다. 자신을 비우고, 낮추고, 사랑으로 내어주며, 하느님의 뜻을 실제 삶으로 실행하는 삶​이다. 바오로 사도가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십시오”(필리 2,4)라고 권고한 것도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의 마음을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라는 뜻이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한 아버지와 두 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똑같이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말한다. 첫째 아들은 처음에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포도밭으로 간다. 둘째 아들은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지만 가지 않는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예”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순종은 아니다. 실제로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 순종이다.

포도밭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할 자리이다. 따라서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라는 말씀은 단지 옛날 사람들에게 주어진 명령이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각자의 자리에서 당신의 뜻을 실천하라고 부르신다. 우리의 가정이 포도밭일 수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와 직장이 포도밭일 수 있으며, 우리가 만나는 가난하고 외로운 이웃이 바로 우리가 일해야 할 포도밭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언젠가가 아니라 오늘, 그리고 말이 아니라 실제 삶이다.

첫째 아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의 회개가 지닌 놀라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는 처음에는 “아니요”라고 했다. 그러나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생각을 바꾸었다. 마태오 복음에서 이 동사는 단순히 생각을 조금 수정한다는 뜻을 넘어, 마음을 돌이키고 방향을 바꾸는 회개의 의미를 지닌다. 처음의 “아니요”가 마지막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반대로 둘째 아들은 아름다운 “예”를 말한다. 그러나 그 “예”는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말과 행동 사이에 단절이 생긴 것이다.

이 두 아들은 우리 밖에 있는 두 종류의 사람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어쩌면 두 아들은 우리 한 사람 안에 함께 살고 있다. 우리는 하느님께 “예”라고 대답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아니요”라고 행동할 때가 있다. 반대로 처음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거나 주님의 뜻을 거부했지만, 어느 순간 마음을 돌이켜 사랑을 실천할 때도 있다. 우리의 신앙 안에는 충실함과 나약함, 열정과 게으름, 순종과 저항이 교차한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한 번의 대답으로 자신의 신앙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방향에서 돌아서 다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다. 신앙은 내면의 감정이나 입술의 고백에만 머물지 않고 삶의 방식으로 드러나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당신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적용하신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마태 21,31)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처음에는 하느님의 뜻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사람들처럼 보였지만, 세례자 요한의 선포를 듣고 회개하였다. 반면 종교 지도자들은 요한이 보여준 “의로운 길”을 보고도 믿지 않았다.(마태 21,32 참조) 여기에서 복음의 역설이 드러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과거보다 지금의 방향을 보신다. 처음에 “아니요”라고 했다는 사실이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것도 아니며, 입술로 “예”라고 말했다는 사실이 자동으로 하느님의 뜻을 실천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이다.

그런데 이 비유를 묵상하다 보면 두 아들 뒤에 신비롭게 서 계신 또 하나의 아들을 발견할 수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11년 9월 25일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이 복음을 묵상하면서, 첫째 아들은 “아니요”라고 말하지만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둘째 아들은 “예”라고 말하지만 행하지 않는 반면, 세 번째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라고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실제로 아버지의 뜻을 끝까지 실행하신 분​이라고 설명한다.

주님의 뜻에 “예”라고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예”를 살아내신 예수님을 따라, 온 삶으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신 성모님, 저희가 저희의 말과 행동 사이에 놓인 거리를 줄여가게 하소서. 처음에는 “아니요”라고 했더라도 다시 돌아설 수 있는 겸손을 주시고, 입술로만 “예”라고 하지 않고 오늘의 삶으로 주님의 뜻을 실천하게 하소서. 저희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저희에게 맡겨진 오늘의 포도밭에서 사랑으로 일하게 하소서. 아멘.

***

– 주님께서 오늘 나에게 “생각을 바꾸고 돌아서라”​고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 하느님께서는 오늘 나에게 어디로 “일하러 가라”​고 말씀하시는가? 나의 일과 노동은 어떻게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가?

–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보여 주었다.”는 말씀에서, 나는 어떻게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의로운 길을 식별할 수 있는가? 그 길을 따라 걷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은총은 무엇인가?

–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치지 않고 그를 믿지 않았다.”는 말씀처럼, 내 삶에서 내가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 나는 하느님께 “예”라고 말하면서 실제 삶에서는 “아니요”라고 행동하고 있는 영역은 없는가?

– 오늘 내가 다시 돌아가서 일해야 할 나의 포도밭은 어디인가, 내 영혼의 포도밭에서 나는 무엇을 가꾸어야 하는가?

연중 제26주일 (마태 21,28-32) 2023

Previous Article

답글 남기기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
*

이 사이트는 Akismet을 사용하여 스팸을 줄입니다. 댓글 데이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