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 여성들에게 보내는 편지

※ 아래는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세계 여성대회를 앞두고 당시 교황이셨던 성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전 세계의 여성들에게 보내는 편지 중 제2항의 일부분이다. 이 대목만으로도 한편의 아름다운 글이다. 교황님의 글 전체를 읽고 싶은 이들을 위하여 교황 교서 전체의 번역본을 주교회의(CBCK) 홈페이지에서 가져와 뒷부분에 수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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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인 여성들에게’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은 여성만이 아는 기쁨과 산고를 겪으며 인간의 생명을 여러분 자신의 품안에 품어주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여러분은 갓난아기에게 하느님의 미소가 되고, 아기에게 걸음마를 가르쳐주며, 성장을 돕고, 아이가 인생 여정을 헤쳐가는 동안 그 영혼의 닻이 됩니다.

‘아내인 여성들에게’ 감사합니다! 사랑과 생명을 다하여 섬기는, 서로 베푸는 관계를 통하여, 여러분은 미래를 영원히 남편과 함께합니다.

‘딸과 자매인 여성들에게’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특유의 감수성과 직관력, 관대함과 성실성으로 가정의 한가운데로부터 사회 전역에 이르는 모든 영역을 풍요롭게 합니다.

‘근로 여성들에게’ 감사합니다! 사회적, 경 재적, 문화적, 예술적, 정치적인 모든 분야에 참여하여 여러분들은 적극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이성과 감정을 조화시키는 문화의 성장과, 언재나 ‘신비’의 의미에 열려있는 생활방식과. 더욱 인간다운 정치·경제 체제로 확립되기 위해 꼭 필요한 공헌을 합니다.

‘축성된 여성들에게’ 감사합니다! 육화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곧 가장 위대한 여성이신 분의 모범을 따라, 여러분은 하느님 사랑의 은총에 대한 순종과 충실성으로 여러분 자신을 열어제칩니다. 여러분은 교회와 전 인류가 하느님과 ‘혼인’ 관계를 체험하도록 도와줍니다. 혼인관계란 하느님께서 그분의 피조물들과 맺기를 원하시는 친교를 훌륭하게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단지 ‘여성’이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모든 여성들에게’ 감사합니다! 여성의 통찰력은 세계 인식을 풍요롭게 하고, 더욱더 정직하고 진정한 인간관계를 도와줍니다. …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1995년 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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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여성들에게 보내는 교서

전 세계의 여성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1. 저는 오는 9월 베이징에서 열릴 제4차 세계여성회의를 앞두고, 연대와 감사의 표시로 모든 여성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우선 저는 이 의미 깊은 행사를 후원해 준 국제연합에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교회는 교황청 대표에게 특별한 소임을 맡겨 베이징 회의에 파견함으로써, 그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의 가슴과 마음에 직접 호소함으로써, 여성의 존엄과 역할 그리고 권리를 고양시키는데 한몫하기를 열망합니다. 최근 베이징 회의와 관련하여 세계여성회의의 사무총장 저르트루드 몬젤라(Gertrude Mongella) 여사가 방문하였을 때, 저는 그분께 여성 문제에 대한 교회의 기본적 가르침을 적은 ‘담화문’을 드렸습니다. 그 담화는 교회 안에서 오늘의 세계에서 여성의 ‘대의’를 증진시키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서, 그것이 나오게 된 특정 상황과는 별도로, ‘일반 여성’들이 처한 상황과 문제를 더욱 폭넓은 시각으로 다룬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저는 이 담화문이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배부되어 읽히도록 모든 주교회의에 보냈습니다.

그 담화에 담긴 주제를 들어, 저는 이제 ‘모든 여성에게 직접 이야기하듯이’ 우리 시대에 여성으로서 존재한다는 의미와 거기서 오는 문제와 전망에 관하여 모든 여성과 더불어 묵상하고자 합니다. 특히 저는 하느님의 말씀에 비추어 본 여성의 ‘존엄’과 ‘권리’라는 근본 문제를 숙고하고자 합니다.

이 ‘대화’는 사실 감사의 말씀으로 시작하여야 합니다. 저의 교서 「여성의 존엄」에서 밝힌 바와 같이, 교회는 “‘여성의 신비’와 모든 여성에 대하여, 그리고 여성의 존엄을 영원한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요소와, 인류 역사를 통하여 여성 안에서 그리고 여성을 통하여 성취된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에 대하여 거룩하신 삼위께 감사를 드리고자 합니다.”(요한 바오로 2세, 교황교서 「여성의 존엄」, 1988년 8월 15일, 31항)

 2. 세상 안에서 여성의 소명과 임무에 관한 주님의 심오한 계획에 대하여 감사함은 곧 그들이 인간의 삶 안에서 보여준 모든 것에 대하여 여성들과 여성들 각자에게 직접, 구체적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머니인 여성들에게’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은 여성만이 아는 기쁨과 산고를 겪으며 인간의 생명을 여러분 자신의 품안에 품어주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여러분은 갓난아기에게 하느님의 미소가 되고, 아기에게 걸음마를 가르쳐주며, 성장을 돕고, 아이가 인생 여정을 헤쳐가는 동안 그 영혼의 닻이 됩니다.

‘아내인 여성들에게’ 감사합니다! 사랑과 생명을 다하여 섬기는, 서로 베푸는 관계를 통하여, 여러분은 미래를 영원히 남편과 함께합니다.

‘딸과 자매인 여성들에게’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특유의 감수성과 직관력, 관대함과 성실성으로 가정의 한가운데로부터 사회 전역에 이르는 모든 영역을 풍요롭게 합니다.

‘근로 여성들에게’ 감사합니다! 사회적, 경 재적, 문화적, 예술적, 정치적인 모든 분야에 참여하여 여러분들은 적극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이성과 감정을 조화시키는 문화의 성장과, 언재나 ‘신비’의 의미에 열려있는 생활방식과. 더욱 인간다운 정치·경제 체제로 확립되기 위해 꼭 필요한 공헌을 합니다.

‘축성된 여성들에게’ 감사합니다! 육화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곧 가장 위대한 여성이신 분의 모범을 따라, 여러분은 하느님 사랑의 은총에 대한 순종과 충실성으로 여러분 자신을 열어제칩니다. 여러분은 교회와 전인류가 하느님과 ‘혼인’ 관계를 체험하도록 도와줍니다. 혼인관계란 하느님께서 그분의 피조물들과 맺기를 원하시는 친교를 훌륭하게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단지 ‘여성’이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모든 여성들에게’ 감사합니다! 여성의 통찰력은 세계 인식을 풍요롭게 하고, 더욱더 정직하고 진정한 인간관계를 도와줍니다.

 3. 물론 단순히 감사하다는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인간을 ‘제약’해 온 역사의 상속자들입니다. 모든 시대와 장소에서 이러한 제약은 여성들의 발전에 장벽이 되어 왔습니다. 여성의 존엄은 흔히 무시되어 왔고, 그들의 요구는 왜곡되기도 하였습니다. 여성들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노예처럼 격하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여성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잃었고, 결과적으로 인간 정신이 황폐해졌습니다. 수세기에 걸쳐 사고방식과 관습을 형성해 온 문화적 제약을 고려할 때, 이에 대한 책임 소재를 밝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구체적인 역사의 상황에서, 적지 않은 교회 구성원들의 객관적인 잘못을 저는 참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러한 유감이 전교회를 새롭게 변화시켜 복음적 시각에 충실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모든 착취와 지배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키는 것에 관해서는 복음서에서 항상 적절한 교훈을 찾아본 수 있는데,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문화적 관습 규범을 초월하여, 여성을 존중하시고 온화하게 대하셨습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여성들이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그분의 사랑 안에서 언제나 지녀왔던 존엄성에 경의를 표하셨습니다. 제이천년기의 끝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우리는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호소를 얼마나 받아들이고 얼마나 실천하였는가?

그렇습니다. 이제 인류의 유구한 역사를 돌이켜 생각함으로써 우리가 져야 할 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용기를 가지고 과거를 검토’해야 할 때입니다. 여성들은 남성 못지않게 역사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흔히 훨씬 더 곤란한 조건에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저는 특히 문화와 예술을 사랑했던 여성들을 기억합니다. 그들은 흔히 시작부터 불리한 조건에서,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누리지 못했고, 홀대와 무시를 당했으며, 그들의 지적 헌신에 응당한 예우를 받지 못하였지만, 문화와 예술에 그들의 일생을 바쳤습니다. 애석하게도 몇몇 극소수 여성들의 역사적 업적만이 역사에 기록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그들의 업적을 기록한 증거마저 잊혀질지라도, 그들이 끼친 유익한 영향은 여러 세대를 거쳐 오늘 우리 세대까지도 인류의 삶을 형성해 온 하나의 힘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여성의 이 위대한 ‘전통’에 인류는 결코 되갚을 수 없는 막대한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그들의 기술이나 전문성, 지적 능력, 민감한 감수성 등 그들의 존엄성이 아니라 단순한 외모에 따라 판단받아 왔으며, 앞으로도 얼마나 더 그러하겠습니까?

 4. 아직도 세계 곳곳에는 여성들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세계에 완전히 들어오는 것을 막는 방해물들이 수없이 산적해 있습니다. 인류의 생존이 모성의 헌신에 직결되어 있지만, 이 헌신이 보상받기보다는 오히려 얼마나 자주 불리한 조건을 감수해 와야 했는가를 생각해도 알 수 있습니다. 아내나 어머니이기를 선택한 사람들이 받아야 하는 차별을 미리 막아내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개인의 권리에 대하여 말하자면, 동등한 노동에 대한 동동한 임금, 노동하는 어머니들에 대한 보호, 승진의 공평성, 가정 권리에서 부부의 평등성, 민주국가 시민으로서 지니는 모든 권리와 의무의 인정 등 모든 영역에서 ‘실질적인 평등성’이 하루빨리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이는 정의의 문제일 뿐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문제입니다. 여성은 점차 미래의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주역이 될 것입니다. 여가, 삶의 질, 이주, 사회봉사, 안락사, 마약, 보건, 생태계 등, 이 모든 영역에서 많은 여성들이 그들의 진가를 발휘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회가 일방적으로 효율성과 생산성만을 가치 척도로 삼는 이 때에, 그 모순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문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화의 과정에 유익한 방식으로 사회체제를 재구성해 가도록 촉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5. 세계 여성이 처한 상황 중 가장 민감한 측면의 하나로, 성적인 면에서 여성이 당해 온 오래되고 모욕적인 폭력의 역사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종 ‘숨겨진’ 역사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제삼천년기를 앞둔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이 현상에 대해 무관심한 채, 체념만 하고 있을 수 없습니다. 여성을 물건으로 삼는 ‘성폭력’을 강력히 단죄하고, 그러한 폭력에서 여성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할 때가 되었습니다. 인격 존중의 측면에서 책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체계적인 성적 착취를 조장하며, 아주 나이 어린 소녀들까지도 돈을 위해 몸을 팔도록 타락시키는 만연된 향락과 상업적 문화입니다.

이러한 도착을 거슬러, 강간으로 인한 임신이라 하더라도 그 태아를 영웅적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여성들에게 크게 감사해야만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라는 상황에서뿐만 아니라 번영과 평화를 누리면서도, 남성의 공격적인 성향을 더욱 부추기는 향락주의적 방종의 문화에 젖어 부패된 사회에서 저질러지는 잔학 행위를 생각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낙태를 선택하는 것은 중죄입니다. 그러나 여성을 탓하기 전에, 그것은 남성의 죄이며, 사회 전반의 환경이 그 공범자입니다.

6. 여성들에게 드리는 저의 감사의 말씀은 이렇듯 ‘진심어린 호소’입니다. 여성들이 그들의 존엄과 역할에 합당한 존중을 되찾을 수 있도록 모두가 나서야 하고, 모든 국가와 국제기구들도 나름대로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여기서 저는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기본권과 여성의 존엄성 수호에 일생을 바친 선의의 여성들에게 경의를 표해 마지않습니다. 여성운동을 심히 부당하고 여성답지 못하며 자기 노출증의 표현이며 심지어 죄악이라고까지 비난하던 시대에 그들은 용기를 가지고 여성의 존엄성을 주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올해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서 저는 여성 해방의 장대한 과정을 살펴보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 여정은 어렵고도 복잡미묘한 길이었으며, 때로는 오류에 빠져드는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정은 실제로 긍정적인 길이었습니다. 여전히 세계 도처에서 여성 특유의 존엄에 대한 인정과 존중과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많은 장벽 때문에, 그 여정이 아직 끝나지는 않았다 해도 말입니다”(4항).

이 여정은 계속되어야만 합니다! 저는 여성과 그 정체성을 완전히 존중하게 되는 진보가 하루빨리 이루어지는 비결은 그 무엇보다도 단순히 차별대우와 불공평한 처사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것도 필요하지만, 여성에 대한 존중은 우선 먼저 ‘여성의 진보를 위한 효과적이고 지성적인 운동’을 통해 회복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여성들의 삶 모든 영역에 시선을 집중하고 ‘여성의 존엄에 대한 보편적 인정’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여성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우리의 능력은, 역사적인 제약에도 불구하고, 다름 아닌 인간의 이성에서 옵니다. 이성은 모든 인간의 마음에 새겨져 있는 하느님의 계명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가 여성의 존엄에 대한 궁극의 ‘인간학적 기초’를 분명히 파악하게 하여, 그것을 인류를 위한 하느님 계획의 일부로 명백히 밝혀줍니다.

 7. 사랑하는 자매 여러분, 우리 함께 인류의 창조를 묘사하는 숭고한 성서 구절을 다시 묵상합시다. 이는 이 세상에 타고난 여성 여러분의 존엄과 사명에 대하여 많은 것을 말해 주는 구절입니다.

창세기는 창조 과정을 시적이며 상징적인 언어로 간략하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셨다.”(창세 1,27)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심오한 진리가 들어있습니다. 하느님의 창조 행위는 정확한 계획에 따라 일어납니다. 우선, 사람이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창세 1,26 참조) 지어졌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이 표현은 곧 ‘사람이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밝혀줍니다.

이어서 우리는 태조부터 사람이 “남자와 여자”(창세 1,27)로 창조되었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성서는 이 사실에 대한 해석을 제공합니다. 곧, 사람이 창조된 세상에서 무수한 피조물들로 둘러싸여 있다 할지라도, ‘그는 혼자’(창세 2,20 참조)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고독한 상황에서 그를 구하려고 개입하십니다.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의 일을 거들 짝을 만들어 주리라”(창세 2,18). 여자의 창조는 이렇게 처음부터 ‘도움의 원칙’으로 나타납니다. 일방적이 아닌 ‘상호’ 도움입니다. 여자가 남자를 보완하는 것은 남자가 여자를 보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상호 보완’하는 관계입니다.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도 ‘인간성’을 표현합니다. 다만, 그 방식이 서로 다르고 상호 보완적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거들다”는 말은 단순히 ‘돕는 행위’뿐만 아니라 ‘돕는 존재’임을 말합니다.

남성과 여성은 육체적, 심리적인 면만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면에서도’ 상호 보완적입니다. 오로지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원성을 통해서만 온전한 ‘인간’이 실현됩니다.

8. 남자와 여자를 지으신 후,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라.”(창세 1,28)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인류를 영속케 하시려고 남자와 여자에게 출산의 능력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지구를 주시며 그 자원을 책임지고 사용하라고 맡기셨습니다.’ 이 성적이며 자유로운 존재인 인간은 땅의 모습을 번화시키라는 부르심을 받습니다. 본질적으로 땅을 경작하라는 이러한 소임을 통하여, 태초부터 ‘남자와 여자는 똑같이’ 동등한 책임을 분담합니다. 남편과 아내라는 풍성한 관계에서, 땅을 다스리라는 공동의 소임에서, 여자와 남자는 고착되고 구별없는 동등성을 가진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영구한 대립과 갈등의 차이점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계획에 응답하는 그들의 가장 자연스러운 관계는 ‘둘의 합일’이며 ‘단일한 이원성’의 관계입니다. 이는 서로를 주고받는 인간 관계를 체험할 수 있게 하며, 서로 책임감을 부여하고 풍요롭게 하는 선물이기도 합니다.

이 ‘둘의 합일’에 하느님께서는 출산과 가정생활뿐 아니라, 역사를 창조하는 과업을 맡기십니다. ‘1994년 세계 가정의 해’에 우리는 ‘어머니인 여성’에게 관심을 기울인 바 있습니다. 1995년 “평등, 발전, 평화를 위한 행동”을 주제로 열릴 베이징 회의는 ‘모든 사회와 국가에 이바지한 여성들의 공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좋은 기회입니다. 이러한 공헌은 주로 영적이며 문화적인 것인데, 사회·정치적이며 경제적인 공헌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회와 국가의 다양한 분야, 그리고 전인류의 발전은 여성의 헌신에 실로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9. 흔히 과학과 기술을 발전의 척도로 삼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에서도 여성의 기여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과학과 기술만이 유일한 발전의 척도는 아니며, 제일 중요한 척도도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와 정신의 가치를 다루는 ‘사회적, 도덕적’ 차원입니다. 일상적인 인간관계, 특히 가족 관계에서 시작하여 흔히 눈에 띄지 않게 발전하는 이 분야에서, 사회는 분명 “여성의 타고난 역량”에 많은 덕을 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유치원, 학교, 대학교, 사회 봉사 단체, 교회, 연합회, 운동 단체 등 다양한 ‘교육 분야’에서 일하시는 모든 여성들에게 아낌없는 감사를 표합니다. 교육 사업이 요청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기꺼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놓는 여성들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그들은 가장 힘없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을 섬기는 데 앞장섭니다. 이러한 일을 통하여 여성들은 ‘정서적, 문화적, 영신적 모성애’를 나타냅니다. 이는 개인과 미래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귀중한 가치입니다. 저는 여기서 교육 사업, 특히 청소년 교육을 가장 우선하는 사도직 임무로 여기는 각 대륙의 많은 가톨릭 여성과 여자 수도 단체들의 증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보건 분야에서 일하였고 지금도 일하고 계시는 모든 여성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좋은 시설을 갖춘 병원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와 위험한 상황에서 거의 순교나 다름없는 봉사의 정신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10. 사랑하는 자매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여성의 타고난 역량”이 무엇을 뜻하는지 주의깊게 성찰해 보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특별한 계획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감사할 뿐만 아니라, 사회와 교회에서 그 역량을 더욱더 완전하게 발휘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 주제는 ‘마리아의 해’에 자주 언급이 되었고, 저도 그 주제에 대해 교서 「여성의 존엄」을 통해 자세히 논하였습니다. 또한 매년 그렇듯이 저는 올해 성목요일에도 사제들에게 서한을 보내, 「여성의 존엄」을 다시 읽어보고, 여성들이 어머니요 자매로서 그리고 사도직의 협력자로서 살아가며 수행하는 중요한 역할에 대해 묵상하라고 권고하였습니다. 이는 혼인의 관점과는 다르지만 역시 중요한 것으로서 창세기에 기록된 대로 남성의 협조자로 부름받은 여성의 ‘도움’의 역할에 관한 것입니다.

교회는 성모 마리아에게서 “여성의 타고난 역량”에 대한 지고한 표현을 보며, 그분 안에서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을 발견합니다. 마리아께서는 자신을 “주님의 종”(루가 1,38)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심으로써 마리아께서는 나자렛 성가정에서 아내이며 동시에 어머니라는 고귀하면서도 힘든 소명을 받아들이셨습니다. 하느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이웃을 섬기셨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섬김’이었습니다. 다름 아닌 이 섬김을 통하여 마리아께서는 당신의 삶 안에서 신비스러우면서도 진정한 ‘다스림’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께서 “하늘과 땅의 여왕”이라 불리시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모든 신자들이 마리아를 그렇게 부르며 기도합니다. 많은 국가와 민족들이 마리아를 “여왕”이라 부릅니다. 마리아에게 ‘다스리는 것’은 곧 섬기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섬김은 ‘다스리는 것’입니다!

가정, 사회, 교회 안에서 권위는 이와 같이 이해되어야만 합니다. 각 사람의 기본적인 소명은 위와 같은 ‘다스림’에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각자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의 자녀로 부름받았기 때문입니다. 재 2차 바티칸공의회가 가르치듯이, 사람은 땅 위에서 “하느님 그분 자신을 위해 원하신” 유일한 피조물입니다. 또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줌으로써만 자신을 완전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사목 헌장, 24항)

마리아의 모성적 ‘다스림’은 여기에 있습니다. 아들 예수를 위하여 당신의 전존재를 내주셨던 마리아께서는 ‘또한 전인류의 아들딸들을 위해 계속하여 아낌없이 내어주십니다’. 결정적 초월적 목적지로 가는 험난한 인생 행로를 따라가며 당신의 인도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마리아께서는 깊은 신뢰심을 일깨워 주십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 자신의 소명에 충실함으로써 이 ‘최종 목표’에 이릅니다. 이 목표는 남성과 여성에게 똑같이 지상의 노고에 대한 의미와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11. ‘섬김’이 자유, 호혜, 사랑의 이름으로 행해질 때, 참으로 인류의 ‘왕다운’ 본성을 표현합니다. 이 역할의 다양성이란 어떤 강요의 결과가 아니라 남성과 여성 특유의 표현이므로, 그것은 결코 여성에 대한 편견이 아닙니다. 이 문제는 특히 교회 안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복음과 교회의 끊임없는 전통 안에서 증언된 그분의 자유롭고 자주적인 선택으로―직무 사제직의 수행을 통하여 교회의 ‘목자’요 ‘신랑’이신 그분의 모습을 보여주는 ‘성화(icon)’가 되는 임무를 남성들에게만 맡기셨을지라도, 이는 결코 여성의 역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관련하여 성직에 서품되지 않은 교회의 다른 구성원들의 역할도 그 가치는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세례를 통해 고유의 존엄성 안에서 ‘공통 사제직’을 동등하게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역할의 구별을 인간 사회에서나 다름없이 기능성이란 잣대로 재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 역할의 다양성은 마땅히 ‘성사적 경륜’, 곧 하느님께서 인류 가운데 현존하시기 위하여 자유로이 선택하신 ‘표징’의 경륜이라는 특별한 기준에 따라 이해하여야 합니다.

더 나아가 이 표징의 경륜과 정확히 일치하여, 성사의 영역과는 다르지만, 마리아께서 숭고하게 살아가셨던 ‘여성’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여성 신자들, 그리고 특별히 ‘축성된’ 여성들 안에 일종의 ‘예언자적’ 본성이 나타납니다.(「여성의 존엄」, 29항 참조) 이는 마리아에게서 온전히 실현된, 또한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신자들의 ‘어머니’가 되기 위하여 고결한 ‘동정녀’의 마음으로 축성된 공동체라는 교회의 정수를 적절히 표현한 강력한 상징이며, 의미심장한 ‘성화적(iconic) 특성’입니다. 우리가 남성과 여성 역할의 ‘성화적(iconic)’ 상호 보완성을 고려해 볼 때, 두 가지 교회의 본질적 차원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즉, 교회는 ‘마리아’의 원리와 ‘사도 베드로’의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앞의 책, 27항 참조)

한편, 제가 올해 성목요일 서한을 통해 사제들에게 썼듯이, 그리스도의 계획에 따라 직무 사제직은 “지배가 아니라 봉사의 표현입니다”(7항).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에 비추어 매일매일의 자기 쇄신을 통하여, 이 사실을 더욱 분명히 강조해야 합니다. 이는 친교의 정신을 발전시킴으로써, 교회에 적절한 참여 수단을 육성함으로써, 그리고 하느님의 성령께서 그리스도 공동체를 세우고 인류에 봉사하도록 부여하시는 다양한 개인적 공동체적 은사를 존중하고 증진함으로써 가능합니다.

교회 이천년 역사의 그 모든 상황 속에서 이 봉사의 광범위한 영역이 역사적인 제약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위대한 “여성의 타고난 역량”을 체험해 왔습니다. 교회의 한복판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유익한 영향을 끼친 탁월한 기량의 여성들이 출현했습니다. 여성 순교자들, 성녀들, 유명한 신비가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특히 저는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와 아빌라의 성녀 데래사를 생각합니다. 교황 바오로 6세께 서는 이 두 성녀에게 교회 학자라는 칭호를 부여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신앙의 감화를 받아 사회에 참으로 중요한 일, 특히 가난한 이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을 시작하도록 한 많은 여성들을 간과할 수가 있겠습니까? 제삼천년기의 교회 역시 “여성의 타고난 역량”의 새롭고 놀라운 표출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12. 사랑하는 자매 여러분, 이제 교회는 다가오는 국제 연합 제4차 베이징 회의에서 ‘여성에 대한 온전한 진리가 명백해지리라.’는 희망을 품는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나 현재의 위대하고 유명한 여성들만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이웃을 섬기는 가운데 여성 특유의 천부적 재능을 드러내는 ‘평범한’ 여성들을 고려함으로써 “여성의 타고난 역량’을 강조해야만 합니다. 여성들은 날마다 이웃들에게 그들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그들의 심오한 소명을 완성합니다. 남성보다도 여성이 ‘인간을 더 잘 인식합니다.’ 왜냐하면 여성은 사람을 가슴으로 알아보기 때문입니다. 여성은 여러 가지 이념과 정치 체제를 뛰어넘어, 인간의 위대성과 그 한계를 꿰뚫어보며,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돕고자’ 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창조주 하느님의 근본 계획이 인류의 역사 안에서 구체화되며, 하느님이 태초부터 모든 이에게, 특히 여성들에게 부여하셨던 그 ‘아름다움’―단순히 육체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정신적인 아름다움―이 다양한 소명을 통하여 끊임없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중대한 베이징 회의의 성공을 위하여 기도하며, 이 회의를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저는 ‘교회 공동체’가 올해를 세상의 창조주시며 구원자이신 하느님께 여성이라는 ‘이 위대한 보물’을 선물로 주신 데 대하여 충심으로 감사하는 해로 삼기를 부탁합니다. 한마디로, 여성은 인류와 교회가 물려받은 근본 유산입니다.

사랑의 여왕이신 성모 마리아께서 여성들을 지켜주시고, 인류를 섬기며 평화에 봉사하고 하느님 나라를 전파하는 여성의 임무에 함께해 주시기를 빕니다!

저의 축복을 전해 드립니다.

바티칸에서

1995년 6월 29일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 대축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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