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센트 반 고흐는 1888년 파리를 떠나 프로방스의 아를에 정착하고, 5월에 화가들의 공동체를 꿈꾸며 ‘노란 집’을 임대한다. 빈센트에게 1888년은 왕성한 작품 시기이다. 그 해에 빈센트는 고갱에게 자기의 초상화를 보내기도 하면서 6점의 자화상과 함께 초상화만도 46점을 그린다. 그때 그는 「인간이야말로 모든 것의 뿌리이다.(1888년 4월 11일, 아를에서,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595)」라고 말한다. 그 무렵 빈센트는 초상화 말고도 <밤의 카페 테라스>나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 이어 이듬해 6월에 그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리기까지 여러 점의 밤 풍경을 그리기도 했다. 그래서 <별이 빛나는 밤>은 6월이면 늘 생각나는 6월의 그림이 되었다. 빈센트는 밤 풍경 등을 그리기 전에 그렇게도 흠모했던 장 프랑수아 밀레의 <별이 빛나는 밤(프랑스어: Nuit Étoilée)>을 분명히 보았을 것이다. 1850년에 처음 완성하여 1865년에 수정한 밀레의 <별이 빛나는 밤>이 빈센트가 화가가 되기로 작정하기 수십 년 전의 작품이니 말이다.
밀레는 「아, 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밤의 광채를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들이 바람의 노랫소리와 침묵과 속삭임을 듣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무한을 느껴야 한다. 수세기에 걸쳐 변함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러한 빛들을 생각하면 놀랍지 않은가? 그 빛은 인간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비추고, 우리 세상이 산산조각이 날 때도 고마운 태양은 아무 감정 없이 세상의 절망을 묵묵히 지켜볼 것이다.(클리프 에드워즈, 하느님의 구두, 최문희 옮김, 솔출판사, 2007년, 108쪽)」라고 쓸 만큼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는 것을 무척 좋아했었다.

밀레나 빈센트가 천 번도 넘게 올려다보았을 밤하늘, 그러나 대개는 어쩌다가 운이 좋아서나 보게 되는 별이 없는 밤하늘을 우리도 올려다보며 산다. 체스터톤G.K. Chesterton은 매번 보던 것에서 갑자기 새로움을 발견하는 놀라움의 순간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삶에는 999번을 보았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다가 1천 번째로 그것을 보면서 그제야 그것이 진짜 제대로 보이는 충격과 놀라움의 순간이 찾아온다는 법칙이 있다.(체스터톤, The Napoleon of Notting Hill-Ch.1, 1904년)」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작품도 그러한 작품일지 모른다. 온 세상 곳곳에서 그 그림만큼이나 많이 보이고 사람들 눈에 자주 띄게 된 작품이 또 있을까? 책에도 달력에도, 또 아이들의 문구용품이나 커피 컵, 퍼즐 맞추기, 스카프나 손수건 등등, 심지어 아주머니들의 장바구에서까지 보게 되는 그림이다.
<별이 빛나는 밤>은 빈센트가 1889년, 생 레미에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그렸던 작품이다. 세상의 열광과는 달리 빈센트는 이 그림을 그다지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듯하다. 빈센트는 편지글에서 「나는 또다시 별들을 너무 크게 그리도록 나를 허락하고 말았다. 다시 그려보려고 하지만 도무지 잘 안 된다.(1889년 11월 26일, 생 레미에서, 에밀 베르나르드에게 보낸 편지, 822)」라고 묘사하면서 “실패작”이라고까지 말한다.(*그가 그렇게 말한 그 뜻에 대해서는 달리 논평해야 한다)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이 해석하고 평론을 가한 <별이 빛나는 밤> 야경을 두고 빈센트는 세상 사람들에게서 그토록 사랑받게 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그 예술적 가치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고요하게 빛나는 정적인 매체가 살아 움직이도록 그림에 움직임을 불어넣은 회오리치는 붓질, 별들이 실제 반짝이게 하는 빛들의 조합과 보색 대비의 흉내 낼 수 없는 전개, 평화롭게 잠든 마을과 살아 움직이는 불타는 밤하늘의 대조로 이루어진 구성,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면서 그림을 하나로 묶는 알필Alpilles 산맥의 낮고 완만한 구릉 사선, 천문학자들이 빈센트가 실제로 보았던 하현달이라고 검증한 달, 프로방스 풍이라기보다는 네덜란드 풍에 가까운 종탑, 빈센트의 또 다른 집착이었으면서 오늘날까지 의미와 상징으로 볼 것인지 형태적 특성으로 볼 것인지가 논란인 사이프러스 나무……그런데도 그렇게만 본다면 999번 그 작품을 본 것에 불과할 것이다. 1천 번째로 마주한 그 그림은 그 작품 속 깊이 숨겨진 진실 그 자체일 것이다.

꽤 과학적이라고 자부하는 일종의 세계관이라는 것이 있겠지만, 어쩌면 그 세계관이라는 것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거짓 철학에 바탕을 둔 것일지 모른다. 톨킨J.R.R. Tolkien은 과학만으로 세상을 설명하려는 이들의 시각이 경이로움이나 신화적 상상력을 지우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당신이 지구 위를 걸을 때 당신은 우주 속 수많은 행성 중 하나를 밟고 있는 것. 별은 별일 뿐, 공 모양의 물질 덩어리, 수학적 궤도에 강제로 묶여 움직이는 것. 질서정연하고, 차갑고, 무의미한 공간 속에서 운명지어진 원자들이 매 순간 파괴되는 곳.(J.R.R. 톨킨의 詩 ‘Mythopoeia’, 1931년)」
이렇게 보면 지구는 그런 별들의 하나일 뿐이다. 그리 특별할 것도 없고 그 안을 채우는 인간마저도 특별할 것은 없다. 우주는 무작위적인 변동의 산물, 물체를 끌어당기고 밀어내는 힘, 자연 요소들 간에 철의 법칙이 지배하는 무작위 과정 속 입자들의 충돌 과정에서 발생한 산물일 뿐이다. 그렇게 본다면 소위 우주 질서의 아름다움은 단순히 우연스러운 발생, 의미 없는 부산물일 뿐이다.

루이스C.S. Lewis는 이러한 관점을 점잖고 아름답게 비판한다: 「과학이라는 신화가 현대인의 마음에 오래도록 뿌리내리며 자라도록 했던 악몽이 이제 서서히 그를 떠나가고 있었다. 그는 ‘우주(space)’에 대해 읽은 적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수년 동안 그의 생각 깊은 곳에서는 별과 별 사이를 가로지르는 그 ‘검고, 차가운 공허’, 그 완전한 죽음의 공간이라는 암울한 상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야 그러한 상상이 얼마나 쓸데없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던가를 비로소 깨달았다. 지금 그들이 헤엄치고 있는 이 ‘찬란한 광휘의 하늘 바다’를 ‘우주’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신성을 모독하는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결코 아니다. ‘우주’는 잘못된 이름이었다. 예전의 사상가들이 더 지혜로웠다. 그들은 그것을 그저 ‘하늘(hevens)’이라 불렀다. 영광을 드러내는 하늘, ‘행복한 기후가 펼쳐지는 곳, 낮이 절대 눈을 감지 않는 곳, 드넓은 하늘의 벌판 위에 있는 곳.’(C.S. Lewis, 우주 3부작 첫 번째 소설인 ‘Out of the Silent Planet’에서)」
어쩌면 상상력 천재인 빈센트 반 고흐가 보고 그리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 ‘높고 찬란한 빛의 하늘 바다’였을 것이다. 빈센트의 작품 안에서 우리는 설령 우리 육체의 눈으로 감지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하늘이 어둡고 황량한 공허의 공간이 아니라 빛으로 가득 차 있음을 본다. 러시아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며 표도르 도스토엡스키Fyodor Dostoevsky의 제자인 블라디미르 솔로비예프Vladimir Soloviev는 하늘의 아름다움이 그가 ‘이데아(Idea)’라고 부르는 것의 구현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이데아’는 「완벽하게 통합된 전체 안에서 각 구성 요소들이 누리는 절대적 자유」를 뜻한다. 모든 아름다움은 다양성 안에서 이루는 하나, 조화로운 전체를 구현한다. 솔로비예프에게 빛은 ‘우주적인 전체 통합’의 상징이며, 하늘은 우주적인 통일성의 그림이다. 높은 차원에서 별이 빛나는 하늘은 다양성과 일치의 이상적인 상호작용을 실현한다. “우주적인 전체-일치, 그리고 그 상징인 빛은 독립적인 초점들의 다양성으로 요소들이 분리되지만, 총체적인 조화를 품어 별이 빛나는 아름다움으로 나타난다.” 하늘은 고요한 환희의 표현이며 혼돈을 이겨낸 빛의 원리가 이루어낸 영원한 승리이다.
그래도 빈센트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짠하다. 「최근에 네가 언급한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1850~1893년)이 보여주듯이 예술가나 시인, 음악가, 화가들이 설령 행복하다손 치더라도 하나같이 물질적인 의미에서 불행하다는 것은 분명히 이상한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인생을 전체로 볼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죽기 전에는 그저 반쪽만 알게 되는 것일까?’라는 영원한 질문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화가들만을 두고 말하자면, 그들은 죽어 묻힌 뒤에도 다음 세대나 그 뒤에 이어지는 세대에게 자기 작품들을 통해 말한다. 그게 전부일까, 아니면 뭔가가 더 있을까? 어쩌면 화가의 인생에서 죽음이 가장 어려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나로서는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별들의 모습은 마을이나 도시들을 표시하는 지도 위의 검은 점들이 나를 그저 꿈꾸게 하는 것처럼 항상 나를 꿈꾸게 한다. 나는 스스로 하늘에 있는 빛의 점들이 프랑스 지도 위의 검은 점들보다 과연 왜 우리에게서 더 멀리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하고 묻는다.
타라스콘이나 루앙으로 가는 기차를 타듯이 별에 가기 위해서 우리는 죽음에 올라탄다. 이러한 논지에서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죽어서는 기차를 탈 수 없듯이 살아있는 동안에도 별에는 갈 수 없다는 것이겠지. 그래서 내게는 콜레라, 결석, 결핵, 암 같은 것들이 지상의 이동 수단인 증기선이나 버스, 철도와 같은 천상적 이동 수단이라는 것이지. 나이 들어 평화롭게 죽는다는 것은 걸어서 간다는 것일 거야.…(1888년 7월 9일~10일, 아를에서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638)」
인생이 늘 우연처럼 다가온 누군가, 무엇인가에서 시작한 인연이듯이 밀레의 작품이라는 영감으로부터 시작하여 빈센트가 죽기까지 그를 꿈꾸게 했던 ‘별이 빛나는 밤’, 덧칠하고 또 덧칠했을 <별이 빛나는 밤>은 실제 그림을 그리기도 전에 이미 그의 죽음에 대한 예감이었을까, 아니면 하늘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 인생은 그처럼 우연, 그리고 예감과 그리움 사이의 끊임없는 긴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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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Alejandro Terán-Somohano가 2025년 5월 22일자로 wordonfire.org에 기고한 <Starry Night and Van Gogh’s Haunting of Faith>라는 글을 읽고, 이에 더하여 쓴 글임.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글과 해당 번호는 온라인 ‘Van Gogh Museum’이라는 사이트에서 따온 것임.(참조. https://vangoghletters.org/) 그렇지만 이 편지글 번호는 영국 Thames & Hudson에서 1958년에 최초 3권으로 발행하였고, 거듭 판을 거듭한 1999년판 <The Complete Letters of Vincent van Gogh>에 수록된 번호와는 다름.
※노래 듣기와 작품 보기 및 더 읽기: 빈센트 https://benjikim.com/?p=5159
아, 고흐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