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목木’이라는 글자는 나무가 땅 밑에 뿌리를 내리는 한편 대지를 뚫고 솟아오르는 모습을 상형한 글자이다. 하느님께서는 낮과 밤, 그리고 물과 뭍을 가르신 다음 뭍에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땅 위에 돋게 하여라.”(창세 1,11) 하심으로써 땅 위에 맨 먼저 나무를 만드셨다. 그렇게 온갖 것을 지으시고 사람까지 만드신
사람이 동물과 달라진 것은 두 발로 걸으면서부터였다고 했다. 너도 걷고 나도 걷고 모두가 걷는다. 매일 걷는다. 사람들의 걸음을 보고 또 내 걸음을 보며 ‘걷는다’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가사의 첫 구절 때문에라도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욱마다 눈물 고였네…』하던 백년설(白年雪 : 본명 이창민 1914~1980년)씨의 오래된 노래 ‘나그네 설움’이 절로 떠오른다. 작사가로 알려진 고려성(高麗星
오늘은 축일 중의 축일이요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인 부활 대축일을 거행한다. 오늘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를 기쁘게 선포하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이는 우리 주님이시며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영원히 살아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시고 끔찍한 죽음으로 죽임을 당하셨으며, 무덤에 묻히셨다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시어 “죽은 이들의 맏물”이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가
누구나 ‘밥이나 한번 먹자’ 할 때 서로 관계를 확인하고 안심한다. 예수님의 공생활은 거의 밥자리의 연속이었다. 오죽했으면 그런 상황이 못마땅해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먹보요 술꾼”(마태 11,19 루카 7,34)이라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했을까? ‘밥자리’를 가리키는 한자 말이 ‘회식會食’이다. 그때 쓰는 ‘모일 회會’는 시루 같은 것이 포개져 있는 형상의 ‘증曾’에 뚜껑을 덮은 꼴이다. 뚜껑 달린 그릇에 이것저것 넣고 끓이거나 조리하는 모양이다.
오늘날의 현대 봉헌생활을 어렵게 하는 세 가지가 있다. 세속주의, 개인주의, 쾌락주의이다. 어쩌면 이 셋은 세 얼굴을 하고 있는 한 가지 것일 수도 있다. 세속주의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주변의 평가와 인정에 급급해하는 강박적 의존에 그 뿌리를 둔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잘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욕구, 멋있다는 말 한마디에 안도하는, 그런 바보 같은 내용들이 수도자들을 세상으로 내몰고
수도생활이란 천국의 삶을 미리 살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이를 미리 보여주는 삶이라 한다. 그래서 수도생활을 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조용한 일상사 안에서 기쁨과 인생의 의미,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매일매일 훈련하는 과정이다. 그런데도 수도자들은 수도원에 오기 전에 살았던 세속의 논리를 오랜 기간 벗지 못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유별난 삶, 자극적인 체험, 과장된 행동 같은 극적인 삶을 꿈꾸고 동경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