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세례 축일 ‘가’해(마태 3,13-17)

오늘의 전례에서는 주님의 공현 대축일에 기념하던 주님의 세례를 따로 떼어 별도로 기념한다. 성 막시모(4세기)께서 『동정녀의 몸에서 나신 첫 번째 성탄,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음성)과 성령 안에 나신 두 번째 성탄』이라고 말한 이 날 교회는 주님의 세례를 기념하고 우리의 세례를 상기한다. 동방교회에서는 공현 축일에 세례수를 축복하는 전통이 있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인간을 위해 영원한 생명의

주님 공현 대축일 ‘가’해(마태 2,1-12)

교회의 전례는 주님의 탄생으로부터 공현까지, 주님의 현존으로부터 현시顯示까지의 역동성力動性을 기념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예수님께서는 요셉과 약혼한 나자렛의 처녀 마리아를 통하여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심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목자들은 천사의 알림을 듣고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를 찾아냈다.”(루카 2,12.16) “목자들은 아기(예수님)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주었다.”(루카 2,17) 그렇게 예수님, 구세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가’해(루카 2,16-21)

교회는 해마다 1월 1일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지낸다. 원래 전례적으로 이날은 성탄 후 8일째 되는 날이므로 과거에는 성경의 전통에 따라 예수님의 할례와 작명 기념일로 지냈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및 ‘세계 평화의 날’로 정리되었다. 성모 마리아께 ‘하느님의 어머니’를 뜻하는 ‘천주의 성모’라는 칭호를 공식적으로 부여한 것은 에페소 공의회(431년)이다. 지역마다 서로 다른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가’해(마태 2,13-15.19-23)

성탄절 다음 주일이다. 성탄으로 나신 예수를 기리는 교회가 그 첫 주일을 성 가정 축일로 지내는 것은 이 세상을 찾아오신 예수께서 인간들의 일상과 가정, 곧 인간들의 법과 제도 안에 들어가셨음을 새기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가정이라는 제도와 그 의미를 되새기고자 함이다. 이 축일에 우리는 ① 나자렛의 성 가정, ② 우리들의 가정, 그리고 ③ 교회라는 하느님의 가정에 대하여

대림 제4주일 ‘가’해(마태 1,18-24)

현대인들은 주님의 탄생에 관한 이 ‘기적적’인 이야기를 신화로 읽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그렇지만 우리 신앙인들은 이 이야기가 우리 신앙에 전달하고자 하는 그 깊은 내용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복음사가의 의도이다. 복음사가는 이 복음을 읽는 이들이 예수님이라는 인물이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보내시고자 하는 바로 그분이며, 하느님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을 전하고 싶어 한다.

대림 제3주일 ‘가’해(마태 11,2-11)

세례자 요한의 위대함을 두고 그가 그리스도 앞에서 진정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겸손한 선구자로 남으려 했다고 말하지만, 그의 또 다른 위대함 중 하나는 어둠과 시련의 순간에 홀로 결정하거나 답을 내리지 않으면서 예수님께 그 답을 청하려고 한다는 점에 있다. 세례자 요한은 이 세상의 권력과 권세 앞에서 움츠러들거나 떨지 않고 확신에 차서 단호하게 거침이 없었다. 그는 주님 앞에서가

대림 제2주일 ‘가’해(마태 3,1-12)

대림 제2주일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만나도록 인도한다. 복음서가 전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은 ‘선구자’인데, 이는 자기 “뒤에 오시는 분”(마태 3,11), 곧 메시아에 앞서 와서 이 세상에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거의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참조. 마태 4,19;10,38;16,24) 제자처럼 비치는데도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비교해 세례자 요한이 더 큰 힘을 지니고 있으며, 훨씬 더 급진적인

대림 제1주일 ‘가’해(마태 24,37-44)

전례력으로 새해 첫 주일이다. 대림 제1주일을 라틴어로는 ‘레바비 주일’(Levavi, 들어올리다)이라는 명칭으로 불렀다. 그 이유는 이날 부르는 그레고리안 성가 입당송 구절이 “Ad te levavi animam meam.”(주님, 당신께 제 영혼을 들어 올립니다)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가’해의 대림절 4주 동안 제1독서는 이사야 예언서에서 취한다.(이런 의미로 이사야를 ‘대림시기의 예언자’라고 부를 수도 있다) 기원전 7∼8세기의 암울한 시기에 이사야 예언자가 메시아께서 오실

연중 제33주일 ‘다’해(루카 21,5-19)

전례력으로 한 해가 저물고, 다시 새로운 한 해가 대림절로 다가온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궁극적 기다림인 종말의 현실을 묵상한다. 전례 복음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마치시려는 시점, 곧 수난과 죽음을 앞둔 시점에 파스카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 쪽에 계시던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마태오나 마르코 등 공관 복음사가들은 오늘 복음의 내용을 공동으로 전한다. 복음의 ‘성전파괴의 예고’는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마태 5,1-12ㄴ, 첫째 미사)

교회는 오늘 전례복음을 통해서 예수님의 ‘산상설교’(마태 5,1-7,27) 중 첫 부분 ‘참행복’에 관한 묵상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오늘 복음은 연중 제4주일 ‘가’해나 ‘모든 성인 대축일’ 미사에서도 같은 대목을 취한다. ※참조. 엔조 비앙키, 모든 성인 대축일(마태 5,1-12ㄴ): http://benjikim.com/?p=15885  / 교황 프란치스코, 모든 성인 대축일(11월 1일): http://benjikim.com/?p=6731 *오늘 강해의 뒷부분에 이완희 신부의 <위령의 날>에 관한 유래와 해설이 있음 1. “산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