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많은 화가가 늘 자신의 모습을 그린다. 렘브란트만도 100여 점이 넘는 자화상을 그렸으며, 붕대를 감은 자화상으로 유명한 빈센트 반 고흐도 30여 점의 자화상을 그렸다. 화가들이 이렇게 자화상을 그리고 싶어 했던 것은 빈센트 반 고흐처럼 모델을 살 돈이 없이 궁했던 가난이 실제적인 이유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자의식과 내면세계, 그리고 자기 삶을 드러내고자 한다. 화가들의

별이 빛나는 밤

빈센트 반 고흐는 1888년 파리를 떠나 프로방스의 아를에 정착하고, 5월에 화가들의 공동체를 꿈꾸며 ‘노란 집’을 임대한다. 빈센트에게 1888년은 왕성한 작품 시기이다. 그 해에 빈센트는 고갱에게 자기의 초상화를 보내기도 하면서 6점의 자화상과 함께 초상화만도 46점을 그린다. 그때 그는 「인간이야말로 모든 것의 뿌리이다.(1888년 4월 11일, 아를에서,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595)」라고 말한다. 그 무렵 빈센트는 초상화 말고도

빈센트 회상

아마도 36년 만에, 맨해튼의 ‘더 메트The Met’에 갔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핑계로 게을러진 나를 부추기신 분은 고맙게도 박영선 전 장관님이시다. 뉴욕에 체류하시던 중 어느 날 나에게 The Met에 있는 그림들의 사진까지 보내시며 방에만 처박혀 있지 말라는 듯 말없이 채근하셨다. 빈센트 반 고흐의 컬렉션에 들렀을 때 오래전 빈센트에 미쳐 모든 작품 사진을 모았고, 당시 네덜란드에 체류하던 조카를 통해 온갖 자료를 구했던

넘어질 도倒

‘넘어질 도倒’라는 글자는 ‘사람 인亻’ ‘이를 지至’ ‘칼 도刂’라는 세 글자가 합하여져 있다. ‘사람 인’과 ‘칼 도’는 익히 짐작이 간다. 문제는 가운데에 있는 ‘이를 지至’이다. ‘이를 지至’라는 글자는 맨 밑의 한 획을 땅이라고 볼 때 그 땅에 내려꽂히는 화살의 모습이거나 새가 땅을 향하여 내려앉는 모양이라 하여 ‘이르다, 다다르다’를 뜻하면서 어딘가에 다다라 마침내 뭔가 상황을 연출하게

식탁

식탁은 친밀의 자리, 서로를 발견하는 자리, 기도의 자리, ‘오늘 어땠어?’하고 묻는 자리, 함께 먹고 마시면서 ‘좀, 더 들어!’라고 말하는 자리, 옛이야기와 새로운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자리, 웃음과 눈물이 있는 자리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서로서로 간에 어쩔 수 없는 거리와 한계가 다가서는 자리, 부모들 사이에서 애들이 긴장을 느끼는 자리, 형제와 자매들이 그들의 분노와 질투를 내뱉는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