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4편과 돈 보스코

어리석은 자 “어리석은 자 마음속으로 ‘하느님은 없다.’ 말하네. 모두 타락하여 악행을 일삼고 착한 일 하는 이가 없구나.”(시편 14/13,1) 모든 악은 하느님이 존재하시고 활동하신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가족의 아버지, 돈 보스코께서는 아들들에게 간단한 예를 들어 하느님의 존재를 설명하신다: 「“눈을 뜨고 우리 시야에 들어오는 것을 잘 보기만 해도 모든 것의 시작이신 창조주 하느님의 존재를 분명하게

신자들의 도움이신 마리아 강복

전례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후배 신부로부터 돈 보스코가 제정하여 교황청으로부터 승인을 받아 로마 전례에 공식적으로 편입된 「도움이신 마리아 강복」의 구성과 그 유래에 관하여 질문을 몇 차례 받았다. 그 후배는 특별히 우리가 성무일도를 바칠 때 ‘끝기도’ 끝에 부르거나 형제 회원들의 장례식을 치르고 성당 문 앞에서 형제의 관을 떠나보낼 때 형제를 환송하며 부르는 노래인 ‘살베 레지나’ 뒤에

시편 12편과 돈 보스코

영혼의 양식: 주님의 말씀 “저마다 제 이웃에게 거짓을 말하고 간사한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합니다.…주님의 말씀은 순수한 말씀 흙 도가니 속에서 일곱 번이나 정제된 순은이어라.”(시편 12/11,3.7)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의 말과 사뭇 다르다.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천상 양식이 없이 우리 영혼은 살 수 없다. 돈 보스코는 아이들에게 “먹지 않으면 사람이 쇠약해지고 결국 죽음에 이르듯이 우리 영혼도 영혼의 음식을

숨겨진 보물, 청소년과 살레시안

복음에서 거의 3분의 1은 비유이고, 성격과 패턴이 다른 요한복음을 제외하더라도 공관복음에만 40여 개의 비유가 전해진다. 비유는 우리를 옭아매고, 깜짝 놀라게 하고, 흔들어 의문을 품게 하고, 빠져들게 하고, 관심사를 살아 있게 하고, 생각에 거듭 몰두하게 하고, 뭔가 채워 넣어야 할 열린 페이지로 남게 하며, 조바심 나게 하고 깨어있게 한다. 예수님의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은총을 청하는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1월 24일)

돈 보스코 성인은 아이들과 함께 모이던 자신의 오라토리오에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1567~1623년) 성인의 이름을 붙였고, 이는 그대로 훗날 그가 설립한 ‘살레시오회’의 명칭이 되었으며, 이에 따라 돈 보스코를 따르는 이들은 스스로 ‘살레시안’이라 칭한다. 돈 보스코는 자신의 오라토리오에 살레시오 성인의 이름을 붙이게 된 연유를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우리는 우리의 오라토리오를 두 가지 이유에서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오라토리오’라고 부르게

교육 제도의 변화를 위하여

2020년 봄에 갑자기 들이닥친 COVID19가 찬 바람 불기 시작하는 가을쯤이면 그래도 수그러들겠지 하였고 뭔가 백신 같은 해결책도 나오려니 했는데,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서 다시 기승을 부린다고 하니 사람들은 지쳐가고 당황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이제는 정신적 질환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가 시작하던 무렵 사람들은 인류가 맞이한 생소한 현실 앞에서 여러

발도코의 성탄 첫 미사

돈 보스코께서 살레시오회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발도코에서 아이들과 함께 드린 첫 번째 성탄 미사는 1846년이다. 돈 보스코는 열악한 피나르디 헛간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을 청하여 이 청원이 수락되자, 아이들에게 영성체와 성체조배에 관하여 설명하고 성가를 가르치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준비시켰다. 돈 보스코의 전기 작가 레뮈엔 신부는 이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의

돈 보스코와 보렐 신부

살레시오회에서는 죠반니 바티스타 보렐 신부(1804~1873년)를 공식적으로 ‘살레시오회 협력자’로 호칭한다. 그는 실제로 돈 보스코의 가장 충실한 친구이자 조언자였으며 첫 협력 사제였다. 서품 후 5년여가 흐른 1846년 돈 보스코가 죽음에 이를 정도로 심각했던 중병에 걸려 고향 집에서 어머니의 간병을 받으며 4개월여 요양을 해야 했을 때, 돈 보스코는 자기의 오라토리오를 보렐 신부에게 맡겼으며, 이는 살레시오회의 초기 정착 과정에

시편 11편과 돈 보스코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의 두 팔 “주님께서는 의로우시어 의로운 일들을 사랑하시니 올곧은 이는 그분의 얼굴을 뵙게 되리라.”(시편 11/10,7) 이 시편을 기도하는 이는 정의로 구원하시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를 표현한다. 돈 보스코에게 정의(벌罰, 제재制裁)는 본질에서 자비(용서)로 대체된다. 돈 보스코는 그의 초기 저술 중 하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분께서는 때때로 정의를 행사하지만, 이는 오직 죄인을 바로잡아

성 베드로 공소(모리알도)

거대한 성전을 중심으로 조성된 베끼 돈 보스코의 생가터 ‘콜레 돈 보스코’에서 시골길을 걸어 나가다 보면 몇 분 거리에서 맨 먼저 도메니코 사비오가 10여 년을 살았던 집을 만나고 그가 다녔던 성 베드로 공소에 이어 돈 보스코께서 ‘여기가 나의 집’이라 불렀던 곳, 아홉 살 꿈이 있었던 곳들을 차례로 만난다. 누구나 압도적인 콜레 돈 보스코의 위용에 놀라지만 여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