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다’해(요한 16,12-15)

교회는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첫 주일로 삼위일체 대축일을 규정한다. 이는 1334년 교황 요한 22세께서 교회의 공식 축일로 지정하면서 그렇게 되었다. 이 축일은 예수님의 생애와 관련된 어떤 복음적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역사 안에서 니체아 공의회(325년)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를 통하여 확정된 교의를 기념하여 거행하고 이에 관해 신앙을 고백하고자 함이다. ‘삼위일체’라는 말 자체는 교의적인 말마디로서 성경에서

마태 14,22-33(연중 제19주일 ‘가’해)

지난주는 원래 연중 제18주일이었으나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과 겹쳤으므로 교회의 자상한 배려로 축일의 복음을 들었다. 그러나 연중 제18주일의 복음을 묵상했다면, ‘비유의 장’인 13장의 비유들을 넘어 주님께서 “외딴곳”에서 “오천 명가량” 되는 수많은 군중에게 빵과 물고기를 많게 하시어 “배불리” 먹이셨다는 말씀(마태 14,13-21)을 들어야 했을 것이다. 군중들은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 “외딴곳”으로 떠나신 것을 알고 겐네사렛 호수의

마태 13,24-43(연중 제16주일 ‘가’해)

지난주에 이어 마태오복음 13장에 나오는 비유의 말씀 중 다른 비유들을 듣는다. ‘가라지’와 ‘겨자씨’, ‘누룩’에 관한 비유들과 그에 따른 예수님의 설명이다. 지난주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씨가 떨어진 ‘토양’에 관한 비유였다면, 이번 주는 ‘씨’, 특별히 좋은 씨에 관한 비유들이라 할 것이다. 1. “좋은 씨…가라지들도 드러났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마태 13,1-23(연중 제15주일 ‘가’해)

앞으로 몇 주간 계속하여 마태오복음 13장에 나오는 비유들을 들을 것이다. 이 마태오복음 13장에는 몇 개의 비유가 담겨있어 일명 ‘비유들의 장’이라고 불린다.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하였다.”(마태 12,14) 하는 말씀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제자들이나 군중들이 한편에서는 떨어져 나가고, 특별히 유다의 종교 지도자들을 비롯한 기득권층은 이미 예수님에 대해서 적대감을 느끼고 예수님을 해치려고 하는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루카 24,13-35(부활 제3주일 ‘가’해)

루카 복음사가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만난 이야기를 자기가 기록한 복음의 마지막 장에 배치한다. 이는 이 이야기를 자기 복음의 결론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본인이 기록한 또 다른 책, 곧 사도행전의 도입으로 삼기 위한 의도가 다분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루카가 나자렛 예수를 두고 기록한 소위 복음 전체의 종합이요 예수님을 통한 구원 역사 전체의 결론을 대면한다.

요한 20,19-31(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부활 제2주일은 일명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서 ‘가’ ‘나’ ‘다’해 모두 복음이 같다. 그러나 독서는 해마다 바뀐다. ‘부활 후 첫 번째 주일’이라 하지 않고 ‘부활 제2주일’이라 하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부활 시기는 부활절 다음 일곱 번째 주일인 성령강림 대축일에 끝난다. 그러나 매 주일을 ‘작은 부활절’로 거행할 것이다.(*이미지 출처-ilblogdienzobianchi.it) 오늘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이라

마태 26,14-27,66(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가’해)

예수 부활 대축일 전 한 주간을 ‘성주간聖週間’이라고 한다. 성주간 동안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 죽음을 기억하고 묵상하며 주님 부활을 맞이하도록 이끌어 준다. 따라서 교회 전례에서 성주간은 전례의 정점을 이루며, 가장 거룩한 시기이다. 성주간을 지내는 관습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3세기 무렵에는 예수 부활 대축일 전 금요일부터 예수 부활 대축일 아침까지 3일 동안을 성주간으로 지냈는데 지금과

요한 11,1-45(사순 제5주일 ‘가’해)

이제 부활절이 가까운 시점에서 교회는 오늘 복음을 통하여 예수님 부활의 예표로서 라자로 부활의 표징을 묵상하도록 우리를 이끈다.(*이미지 출처-ilblogdienzobianchi.it) 1. “마리아와 그 언니 마르타가 사는 베타니아 마을의 라자로” 복음은 “어떤 이가 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는 마리아와 그 언니 마르타가 사는 베타니아 마을의 라자로였다.”(요한 11,1)라고 시작한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체류하시는 동안 사랑하는 이 친구들을 자주 찾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요한 9,1-41(사순 제4주일 ‘가’해)

부활로 가는 여정에서 교회는 지난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 주시는 생수에 관해 묵상하도록 초대한 뒤, 오늘 복음을 통해서는 빛에 관해서 아니 더욱 엄밀하게는 어둠을 뚫고 우리를 헤쳐나오게 하신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서 묵상하도록 초대한다.(*이미지 출처-ilblogdienzobianchi.it) 1.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누가 죄를 지었기에…나는 세상의 빛” 문맥으로 보아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초막절(수꼿 축제, סֻכּוֹת, Sukkot. 참조-레위 23,33-44 신명 16,13-15)을

요한 4,5-42(사순 제3주일 ‘가’해)

요한 4,5-42(사순 제3주일 ‘가’해) 초대교회에서는 사순시기를 현재의 사순 제3주일부터 3주간만을 지냈고(성주간을 포함하면 4주간), 이 기간을 새로운 영세자들을 위한 집중적인 세례 준비 기간으로 지냈다. 통상적으로 사순 제3주일은 세례 준비자들을 위해 첫째 수련식을 거행하는 주일이다. 이러한 내용은 오늘부터 지내는 이후 주일의 복음 주제들과 잘 어울린다. ‘다’해를 제외한 ‘가’, ‘나’해에는 이후 3주간 동안 요한복음으로 주일 복음을 듣는다. 올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