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교황의 이름 Leo XIV

2025년 5월 8일 새로 선출된 교황의 이름은 원래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Robert Francis Prevost이다. 그는 1955년 9월 미국 태생이며 페루 국적도 가지고 있다. 교황이 되면서 새로운 이름을 선택할 수 있는 오랜 전통에 따라 그는 레오 14세로 명명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교황이 반드시 새 이름을 선택했던 것은 아니다. 교회의 역사 안에서는 적어도 500년 이상 자기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던

교황 프란치스코의 구두

교황 프란치스코는 자신이 평생 신었던 검정색 단화를 신고 관에 누웠다. 그렇지만 교황의 공식 의전 복장에서 신발은 원래 빨간색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순교자들의 피와 희생에 연결되어 있으며 나아가 성령과도 연결된 색이기 때문이다.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교황으로 선출된 후 가장 먼저 요청했던 것 중 하나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신던 검정 구두를 가져다 달라는 것이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교회 안팎에

교황 레오 14세의 문장紋章과 표어

사제가 주교로 서품되거나 나중에 추기경으로 서임될 때는 공식 문장紋章을 채택하게 된다. 추기경에서 교황이 될 때는 이 문장을 그대로 사용할 수도 있고, 교황으로서 문장을 변경할 수도 있다. 전임 3명의 교황은 이미 추기경 시절에 사용했던 그 문장을 그대로 사용한 바 있었고, 교황 레오 14세 역시 그가 추기경으로서 사용했던 문장을 계속 사용한다. 방패 문장의 상단에 있는 청색 바탕에

바베트의 만찬

교황 프란치스코는 25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진 <희망>이라는 자서전을 남겼다. “저는 한낱 지나가는 발걸음일 뿐입니다(I am just one step)”라는 마지막 장에서 교황은 교회에는 항상 희망이 있고, 교회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임을 역설하면서 교회와 교황직의 본질이 ‘섬김’에 있음을 언급한다. 이때 교황은 교회가 자칫 ‘경직성(rigidity)’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점, 그렇다고 ‘너도 좋고 나도 좋으며, 이것이나 저것이나 무조건 다 좋은

교황 프란치스코 무덤의 흰 장미

생전 부탁에 따라 교황 프란치스코의 묘소가 산타 마리아 마죠레 성당에 마련되었고, 2025년 4월 27일 일반에 공개됨에 따라 수많은 이들이 묘소 앞을 찾는다. 묘소 앞에는 아무런 수식어 없이 ‘FRANCISCUS’라는 이름만이 새겨졌고, 그 앞에는 흰 장미 한 송이가 놓였으며, 벽면에는 평소 늘 목에 걸었던 착한 목자가 새겨진 철제 십자가의 복제본이 걸렸다.(*사진-교황청 공보국) 바티칸 뉴스에 따를 때, 흰

최후의 만찬과 프레즐/프레첼

정리되지 않은 정보는 그저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빤히 알고 있지만, 정보는 스스로 자가 학습하고 생성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가 넘쳐나고 또 넘쳐나는 정보로 정보에 접하는 이들을 익사시키거나 바보로 만드는가 하면, 알고리즘이라는 영특한 도구를 등에 업고 날개라도 단 듯 특정한 방향으로 사람들을 세뇌하고 가스라이팅 한다. 그런데도 현명한 이는 접하는 정보를 잘 식별하고 활용하여 자기식대로 정리한다. 이럴 때 인터넷은

성 토요일에 관하여

성 토요일은 성삼일 중 독특한 날이며, 부활절 전 마지막 준비의 날이다. 성 목요일에 성체성사의 제정과 주님의 만찬을 재현하고, 성 금요일에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한 교회는 초대 교회로부터 성 토요일을 기도와 참회·보속의 마지막 날로 지내면서 예수님의 무덤에서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의 부활을 인내롭게 기다리는 날로 지냈다. 성 토요일은 교회가 모든 신자를 강렬한 ‘기다림’으로 초대하는 전례력의 독특한 날

십자가에서 내려지시는 예수님

수많은 작가가 조각이나 그림, 그리고 글들을 통해 십자가에서 내려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렸다. 카라바지오Caravaggio(1571~1610년)라고 부르기도 하는 미켈란젤로 메리시Michelangelo Merisi도 그 장면을 “Deposizione(영어 deposition)”라는 제목으로 그렸는데, 우리 말에서는 간혹 원제목과는 맞지 않게 ‘그리스도의 매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별히 예수님의 수난을 기리는 성금요일에 자주 회자하면서 카라바지오의 최고 걸작으로 알려지는 작품은 바티칸이 소장하고 있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을 배반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호산나!

“호산나(ὡσαννά)”라는 말은 우리말 신약성경의 복음서에서만 6번(마태 21,9;21,15 마르 11,9.10 요한 12,13) 등장하는데, 루카복음에는 보이지 않는 말이다. 모두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군중이 환호하며 외치는 말이다. 구약성경의 언어인 히브리어로는 הושע נא(Hosha na) 혹은 הושענא(Hoshana)라는 말로서 “아, 주님, 구원을 베푸소서. 아, 주님, 번영을 베푸소서.”(시편 118/117,25 *참고. “주여, 우리를 살려 주소서, 아아 주여, 우리를 잘살게 해 주소서.”-최민순 역)라는

Jesus Loves Me

※ 다음 글은 2025년 4월 한국 살레시오회의 연례 피정에서 나누었던 내용 중 한 꼭지이다. 이 내용은 피정 인도자인 헨리 보네티(Henry Bonetti, 권선호, 1943년~) 신부님께서 <Peter Kreeft, 당신을 사랑하시는 하느님The God Who Loves You, Ignatius Press, SF, 2004>이라는 책의 제1장을 요약 정리하면서, 여기에 <James D. Whitehead and Evelyn Eaton Whitehead, Holy Eros, Orbis, Maryknoll, NY,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