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자상聖母子像

교회의 역사 안에 성모님과 아기 예수를 묘사한 헤아릴 수 없는 형태의 성모자상聖母子像이 존재한다. 교회의 유구한 역사와 신앙 안에서 성모자상이 그토록 사랑받아 온 이유에는 여러 가지 신학적, 영적, 인간적 이유가 겹쳐 있다. 1. 성모자상은 인류의 역사 안에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 강생(Incarnation)의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시적인 상징이다. 성모자상은 곧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라는 신비의

살베 레지나Salve Regina

‘살베salve’라는 말은 라틴어이다. 우리말에서 ‘안녕!’ 정도에 해당하며, 영어로 누군가에게 인사하면서 서두에 ‘hello’ 혹은 ‘greetings’라고 하는 뜻이다. 라틴어 ‘레지나regina’는 ‘여왕’이므로 ‘Salve Regina!’를 직역하면 ‘안녕하세요, 여왕님!’이 될 것이다. 보통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모님을 부르는 호칭이면서 고유 명사처럼 ‘성모 찬송’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 가톨릭 성가집 234~279번은 성모님과 관련한 노래를 모아놓은 부분인데, 그중 <모후이시며(278번)>라는 성가에 Salve Regina라는 부제가 붙어

이젠하임Issenheim 제단화祭壇畵

인간의 고통 –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thias Grünewald, 1475~1528년)의 이젠하임Issenheim 제단화祭壇畵를 중심으로 보는 인간의 고통 *이 그림은 독일 국경 근처 프랑스 동부 알자스 주의 작은 마을인 이젠하임의 성 안토니오 수도원 제단화로 그려졌으며, 니콜라우스 폰 하게나우(Niklaus von Hagenau, 1445~1538년)가 조각한 고딕식 목각 제단에 끼워져 있다. 가동식(可動式)의 여러 날개가 붙은 제단화로서 2중 여닫이로 되어 있으며, 닫혔을 때의 크기는 너비

아시시의 성녀 아녜스

아시시의 성녀 아녜스(St. Agnes of Assisi, 1197~1253년)의 원래 이름은 카테리나 오프레두치아로서 아시시의 성녀 클라라(St. Chiara of Assisi, 1194~1253년, 본명은 이탈리아어로 키아라이며 널리 알려진 이름 클라라Clara는 라틴어식 이름)의 여동생이다. 언니의 첫 번째 추종자로서 클라라 수녀회의 초석이 되었으며, 사후 500년 뒤인 1753년에 교황 베네딕투스 14세에 의해 시성되었다.(*언니 클라라는 사후 2년 뒤인 1255년 교황 알렉산데르 4세에 의해 시성)

아시시의 성녀 클라라(글라라)

아시시의 성녀 글라라 탄생 800주년에 즈음한 교황 교서  가난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성녀 글라라 친애하는 글라라 봉쇄 수녀 여러분, 1. 800년 전 귀족 집안인 파바로네 디 오프레두쵸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는데, 그분이 바로 아시시의 글라라입니다. 이 “새 여성” – 프란치스칸 가족의 총봉사자들이 최근의 서한에서 그녀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 은 성 프란치스꼬 그늘에서 “작은 나무”로 살았습니다. 성

도미니코 성인의 어머니 복녀 제인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도미니코 성인은 도미니코회라는 수도회의 설립자이다. 그런데 성 도미니코의 어머니 역시 성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도미니코 성인의 어머니는 아자의 제인Jane(Joan or Joanna) of Aza이라고 알려지는 복자이다. 레오 12세 교황께서 1828년에 그녀를 시복하셨다. 많은 이에게 알려지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도미니코 수도회에서는 수도회를 창설한 성인의 어머니이므로 성녀께 대한 신심을 아끼지 않는다. 도미니코 성인에 비해

세계 대전, 8월의 성모님 축일, 전례력

1945년 4월 30일 게르만족 나치를 이끌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자살하고, 그의 권한이 카를 되니츠Karl Dönitz에게 이양되었으나, 5월 2일에 소련군이 그를 베를린에서 체포함에 따라 독일군을 대표하여 빌헬름 카이텔Wilhelm Keitel이 5월 8일에 무조건 항복 문서에 공식 서명한다. 따라서 유럽은 다음날인 5월 9일에 제2차 세계 대전의 종료일이 아닌 ‘승리의 날’로 전쟁 종식과 다시 찾은 평화를 기념한다. 그렇지만 제2차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모든 성인이 하느님의 사람이고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일을 하신 분들이지만, 인류의 역사 안에 아직까지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만큼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성인이 또 있을까 싶다. 스페인 바스크 귀족 가문 출신인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St. Ignatius de Loyola, 1491~1556년)는 예수회 창립자이자 초대 총장이다. 46세의 늦은 나이로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교황청으로부터 1540년에 예수회 회헌을 인가받았다. 예수회의

“나를 붙들지(만지지) 마라”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요한 20,17)』 *** 부활하신 예수님과 마리아의 만남 장면에서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하신다. 성경의 언어인 희랍말은 ‘메 무 압투(Μή μου ἅπτου, mḗ mou

성 야고보 사도(7월 25일)

5월 3일에 기념하는 알패오의 아들 작은(소小) 야고보와 달리 7월 25일에 기념하는 이른바 큰(대大) 야고보 사도는 제베대오의 아들로서 성경의 기록에 따라 “천둥의 아들”(마르 3,17)이라고도 불린다. 갈릴래아 벳사이다 출신 어부로서 42년경 예루살렘에서 순교하셨으며, 스페인의 순례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끝에서 이분의 기념 성당을 만난다.(※참조.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5월 3일) https://benjikim.com/?p=9714 조개껍질이 성지 순례의 상징이 된 이유 https://benjikim.com/?p=4991)  예수님께서 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