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헌생활을 하다 보면 흔히 짓게 되는 죄 세 가지가 있다. 게으름, 험담, 그릇된 집착이 바로 그것이다. 게으름은 봉헌생활이 식솔들 먹여 살릴 걱정 없이 살아도 되고 내 입과 생존을 위해 벌이를 하지 않아도 되며 평생을 보장받는 철밥통인 까닭에서 비롯된다. 또 무슨 일을 하건 말건 데드 라인이라는 것이 없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 앞에서 ‘훗날’ 셈해야 한다는 그럴듯한
봉헌 생활은 궁극적으로 세상에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 하는 삶이다. 하는 일을 통해서 뭔가를 보여주려 하면 백발백중 실패이고 어쭙잖다. 무엇을 하든 그 일에 임하는 태도와 마음을 보여주려 할 때 성공이다. *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인생에는 반드시 분기점이 되는 산들이 있게 마련이다. 모세라는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먼 길을 나섰을 때, 이집트에서 하느님의 산인 시나이 산에 이르는 전반기가 있었고, 산으로부터 십계명으로 무장한 백성들이 다시 모압의 평야에까지 이르러서야, 비로소 약속의 땅을 볼 수 있었던 후반기가 있었다. 시나이 산이 분기점이었다. 엘리야 예언자가 카르멜 산에서 이교도들의 신과 대적을 벌여 미움을 받게 되고, 이에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 이 세상에서, 정작 중요한 것에는 눈길을 돌리지 못하게 하고 제소리만 들으라고 강요하는 이 요란한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항구함으로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첫째는 무엇보다 먼저 교회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사실 “예수님은 좋아도 교회는 싫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교회와 예수님을 분리하면 현대인에게 가장 큰 영성적 위험이 초래될
세 가지 유혹은 빵을 만들어 보라는 유혹, 높은 데서 뛰어내리는 재주를 부려보라는 유혹, 세상의 모든 것을 줄 터이니 악마에게 복종하라는 유혹이었다. 우리네 인생살이에도 배고픔과 기본적인 욕구들을 충족시키기 위한 빵의 유혹, 사람들 앞에 우쭐대고 싶은 묘기와 명예의 유혹, 그리고 내 주변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과 권력의 유혹이 있다. 이런 의미로 예수님께서 받으셨던 세 가지 유혹은 우리네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이란 주제어를 둘러싼 소용돌이의 중심개념은 결국 ‘관계’이다. 사람은 누구나 고립을 두려워하고, 외로움을 벗어나고 싶으며, 내 집에 있듯이 편안함을 누리고 싶고, 또 어딘가, 누군가에게 강하게 소속되고 싶으며, 안정된 나날이 되고 싶고,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랑을 받고 또 사랑하는 그런 ‘관계’를 살고 싶다. 관계와 관계 속에서 누군가가 내적 평화, 일치, 하나 됨, 전체, 완벽 같은 이런
우리는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 보면서 과거를 두 편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습성이 있다. 한 편은 감사해야 할, 그리고 오래도록 기억했으면 좋을, 그런 은혜로운 순간들이고, 또 한 편에서는 잊어버려야 할, 아니 어쩌면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서 잊어버리고 싶어지는,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을 법한 체험의 시간들이다. 감사하며 은혜 속에 산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과거, 좋았던 순간만큼이나 나빴던 순간, 그리고 기뻤던 때만큼이나 슬펐던 때까지도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지금 내가
어느 날 예수님께서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 하신다. 예수님으로 이루어진 그리스도교의 완성은 무엇일까? 구약이 신약이 되는 것, 유다인의 율법이 그리스도의 복음이 되는 것, 법이 사랑이 되는 것, 결국 세로축 하느님 사랑과 가로축 이웃사랑으로 가는 예수님의 십자가요 새 계명이다. 십자가를 가슴에 안고 예수님의 새
외국말을 배울 때어리석게도 세월이 가면 외국말이저절로 들리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렇듯이 봉헌생활을 할 때에도세월이 가다 보면성덕이 출중해지는 것으로 알았다. 형제들 간의 아픔들도 이렇게 성장한 성덕으로서로서로 양보하게 되고서로서로 이해하게 되고서로서로 받아들이게 되는 줄 알았다.그래서 하나가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착각이었고잘못된 명제였다는 것은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원뿔은 원을 밑면으로 삼고, 원 밖의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