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거룩한 섭리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은총을 분배하여 주고 있으니. 그 거룩한 섭리는 얼마나 경탄할만한 것인가? 앞서 말한 것처럼, 영원한 섭리에는 한가지 비교할 수 없는 특전이 있으니, 이것은 여왕들 중의 여왕이시며, 아리따운 사랑의 어머니시며 지극히 뛰어나게 완전하신 성모님, “언제까지나 영원한 여왕”(이사 47,7)이신 성모님을 위한 것이다. 물론 특별한 은혜를 입은 이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제6장 인간을 구원하시는 데 있어서 하느님의 섭리로 말미암아 드러난 몇 가지 특별한 은혜에 대하여 하느님은 우리가 대자연에서 보는 삼라만상의 그처럼 크나큰 다양성 안에서 당신 권능의 비할 데 없는 풍요함을 기묘히 드러내 보이신다. 그러나 우리가 은총 속에서 인식하는 여러 가지 선 안에서는, 상이성 안에 있는 당신 착하심의 무한한 보배를 훨씬 더 훌륭하게 나타내게 하신다. 테오티모여, 왜냐하면
제5장 천상적 섭리는 사람들에게 매우 풍성한 구원의 은혜를 마련하여 주었다 그런데, 테오티모여, 나는 하느님의 의지에다 순서를 붙여, 한 가지를 생각하시고, 원하시고, 그다음 또 한 가지를 생각하시고 원하신 것처럼 말했는데, 이것은 내가 앞서 말한 것처럼 즉, 모든 것이 지극히 유일하고 단순한 행동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더구나, 하느님의 이 유일하시고 단일하신 행동의 순서와 질서와 구별과
제4장 하느님께서 이성적인 피조물에게 끼치시는 초자연적 섭리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하신바, 모든 것은 다 사람들과 천사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다. 이 면에 대해서도 하느님 섭리의 질서가 있으니, 성경과 옛사람들의 가르침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그 섭리의 서열을 발견할 수가 있고 또 우리의 연약함을 빙자하여 우리는 그것을 말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하느님은 영원으로부터 당신의 피조물들을
제3장 일반적으로 본 하느님의 섭리에 대하여 그러므로 테오티모여, 하느님은 여러 가지 많은 행동을 하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전능하신 의지의 신적神的인 유일한 행동만이 당신의 무한한 완전성으로써 당신 작품의 온갖 다양성을 생기게 하는데 넉넉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죽을 인생들은 우리의 비좁은 정신이 획득할 수 있는 지성의 방법과 모양을 따라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섭리에 대해
제2장 하느님은 당신의 고유한 천주성인 단 하나의 행위만을 지니신다 우리는 여러 가지 능력과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매우 다양한 갖가지 행동을 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들은 무수한 일을 하게 된다. 즉, 다양한 능력들이란 실제로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동작, 양육, 깨달음, 원욕, 말투, 걸음걸이, 소리내기, 노래하기, 요리하기, 춤추기, 수영하기 등으로서 대단히 많고 상이한
제2권 인간세대의 역사와 하느님 사랑의 천상적인 탄생 제1장 하느님의 완전성은 유일하고 무한히 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다 해가 뜰 때, 아침 노을이 붉게 물들다가 조금 후 즉시 어둡게 움푹 파인 듯 보이거나 해질 때, 어둠침침하고 흐려 날이 꾸물거리면 비가 올 징조라고들 흔히 말한다. 테오티모여, 태양은 붉지도 검지도 않고 회색도 아니며 푸르지도 않다. 저 거대한 광모(光母)와도 같은
제18장 하느님을 사랑하려는 우리의 자연적 경향도 무익하지는 않다 만일 우리가 본성적으로는 하느님을 만유 위에 사랑할 수 없다면, 사랑하려는 그 자연적 경향은 왜 있겠느냐? 본성이, 우리에게 줄 수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자극함은 무익하지 않겠느냐? 만일 그 값진 물을 우리가 마실 수 없도록 하셨다면 왜 우리에게 그 물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하셨겠는가? 테오티모여, 하느님은 우리에게 얼마나 착하게
제17장 우리는 하느님을 만유 위에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자연 본성상으로는 지니고 있지 않다 독수리란 놈은 심장이 매우 크고 힘이 세어서 높이 나른다. 그러나 높이 나르는 것보다도 비할 데 없이 뛰어난 시력을 지니고 있어서 날개깃보다 훨씬 더 민첩하고 요원하게 시야를 넓힌다. 이와같이 하느님께 대한 자연 본성적이며 거룩한 경향에 자극되어 생기를 얻은 우리 영혼은 하느님의 신성을
제16장 우리는 하느님을 만유 위에 사랑하려는 자연적 경향을 지니고 있다 만일 아담이 창조 시에 받았던 과성은혜(*過性恩惠, donum praeternaturale-인간의 본성本性을 더욱 완전하게 하는 하느님의 은혜, 원죄原罪를 범하기 이전 원조元祖가 고통과 죽음을 당하지 않고 탐욕에 지배되지 않은 은혜를 누렸던 상태를 두고 한 말이다. 성 토마스는 이 은혜가 은총의 소산所産이라 하였다. 이 은총을 입은 사람은 고통도 죽음도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