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 묵상

피터 존 카메론Fr. Peter John Cameron, op이라는 도미니코회 소속 사제(우리나라의 ‘매일미사’와도 같은, 그러나 훨씬 다양하고 많은 기도나 자료 등이 담긴 미주 지역에서 유행하는 ‘마니피캇Magnificat’이라는 월간지의 전前 편집장이었던 분)께서 가톨릭 웹사이트 ‘알레테이아Aleteia’에 2023년 4월 1일 자로 기고한 글(https://aleteia.org/2023/04/01/heres-a-7-step-pattern-for-growing-in-holiness/)을 바탕으로 하였으나 제목부터 달리하고 첨가하여 윤색하고 정리한 내용임을 밝힙니다. 이미지 역시 로렌스(Fr. Lawrence, op)라는 도미니코회 사제의 것으로서 Aleteia의

생명의 달, 4월에

이런 생명의 달인 4월을 두고 ‘잔인한 달’이라 하는 유래를 학생들에게 물었더니 아무도 모른다. 신에게 영원히 죽지 않을 축복을 청하여 그 축복은 얻었으나, 싱싱한 젊음을 유지하는 축복은 얻지 못하여, 죽지는 않되 한없이 늙어가는 처지가 되었음을 슬퍼하면서 봄날의 약동하는 생명 앞에서 제발 죽게 해 달라고 빌었다는 내력을 아는 아이들이 요새는 없다. 그저 중간고사가 있는 달이라 잔인하고 미팅에서

냉소적인 사람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마태 11,17) 한다. 인생은 생명과 죽음,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열정과 절망, 결국 춤과 곡哭이다. 두 극極 사이의 어디쯤엔가에 지금의 내가 있다. 이도 저도 아닌 “미지근”(참조. 묵시 3,16)은 무기력이거나 부정적인 극으로 기울어진 냉소이다. 냉소는 게으름에 닿는다. 기쁨의 반대말은 슬픔이나 비애가 아니다. 기쁨의 반대말은 바로

그림으로 본 라자로의 부활(요한 11,1-44)

렘브란트의 라자로의 부활은 요한복음 11장 1절-44절을 그린 작품이다. 렘브란트는 이 작품의 제작과 함께 다양한 구성으로 이 주제를 소묘하거나 판화로 제작하기도 했다. 그림에서 예수님께서는 힘찬 손동작과 함께 “큰 소리로” 말씀하시며 이미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나는” 무덤에 묻힌 라자로가 살아나게 하신다. 라자로의 누이 마리아와 마르타는 다른 이들과 함께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놀란 목격자들의 표정,

십자가 호칭 기도

십자가는 하느님의 인간 사랑 십자가는 위 세로축과 옆 가로축 십자가는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 십자가는 최후의 만찬과 음모, 배반 십자가는 예수님의 죽음과 성체성사 십자가는 겟세마니의 피눈물 십자가는 오직 하나 하느님의 뜻 십자가는 유다의 배반과 베드로의 부인 십자가는 인간의 죄 십자가는 권력자의 진실회피 십자가는 위선자들의 두려움 십자가는 침묵의 진실 십자가는 군중의 억지 십자가는 죄인 사이의 하느님

물의를 빚어 죄송합니다

물의를 빚어 죄송합니다. ‘일상잡설’ 난에 옛글을 하나 올렸고, 옛글임도 분명히 밝혔었는데, 거기에 나오는 아팠다는 얘기에 여러 분들이 저의 최근 소식인 줄로 착각하시고 지난 겨울에 어디 아팠느냐며 급하게 전화나 문자들을 해오시는 바람에—‘2001년도’의 글이었습니다. ㅎㅎㅎ 참고로, 몇몇 분들이 글 끝에 나오는 암호 같은 숫자가 뭐냐고 묻는 분들도 계셨는데, 그것은 그 글을 쓴 해당 년도와 날짜임을 밝혀드립니다. 모두에게

돈 보스코로부터 배우는 7가지 팁

교육 현장에서 지친 교사들이나 좌절한 부모들을 위한 돈 보스코의 유용한 조언들이다. 아이들 양육에 있어 교사나 부모에게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는 아마도 언제, 어떻게 아이들을 훈육할 것인가이다. 아이 앞에서 뭔가 중요한 신호를 보냈고, 정확히 버튼을 눌렀는데도 아이에게서 아무런 변화도 발견할 수 없을 때는 참 막막하고 답답하며 내면에서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돈 보스코라면 어떻게 할까? 말썽꾸러기가

봉헌 생활

봉헌 생활은 궁극적으로 세상에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 하는 삶이다. 하는 일을 통해서 뭔가를 보여주려 하면 백발백중 실패이고 어쭙잖다. 무엇을 하든 그 일에 임하는 태도와 마음을 보여주려 할 때 성공이다. *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봄꽃

봄이 오려고 그랬는지 지난겨울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병원 신세를 졌다. 별로 술을 많이 먹고 살았던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뱃속에 궤양도 심하고 혹도 하나 생겼다 해서 그것을 치료도 하고 도려내어 버리고 왔다. 사는 곳이 아름답고 깨끗한 이곳 춘천이니 공해 핑계할 것은 없고, 무자식 상팔자고 돈 벌 걱정 아니해도 되니 스트레스받을 일은 더욱 없고, 처자식 없는 것이

마태 26,14-27,66(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가’해)

예수 부활 대축일 전 한 주간을 ‘성주간聖週間’이라고 한다. 성주간 동안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 죽음을 기억하고 묵상하며 주님 부활을 맞이하도록 이끌어 준다. 따라서 교회 전례에서 성주간은 전례의 정점을 이루며, 가장 거룩한 시기이다. 성주간을 지내는 관습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3세기 무렵에는 예수 부활 대축일 전 금요일부터 예수 부활 대축일 아침까지 3일 동안을 성주간으로 지냈는데 지금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