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견/뵈올 현見

‘見’이라는 글자는 ‘견’이나 ‘현’으로 음이 나는 글자이다. ‘눈 목目’ 밑에 ‘사람 인人’을 붙여 사람의 눈이 하는 일을 나타낸다. 나중에 이쪽으로부터 보는 것을 ‘볼 시視’, 저쪽으로부터 무엇인가가 보이는 것을 ‘볼 견見’으로 나누어 쓰면서 ‘보다’와 ‘보이다’가 갈린다. ‘눈 목目’이 들어가 ‘보다’라는 새김을 하는 글자들은 참 많다. 앞서 말한 ‘볼 견見’과 ‘볼 시視’ 말고도, ‘관찰하다’ 할 때의 자세히

닭 유酉

‘유酉’라는 글자는 음과 훈을 달 때에 ‘닭 유’라 하기도 하고, ‘술병 유’나 ‘술 유’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원래 이 글자가 밑이 좁고 가는 술을 빚는 술 단지의 모양을 본떠 만든 글자이므로 후자가 먼저이다. 그런데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하는 십이간지十二干支의 표시 중에 열 번째인 닭이 ‘유’에 해당하므로 ‘술 유’의 음을 빌어 ‘닭 유’라 하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천사天使

천사는 일반적으로 하느님의 뜻을 인간들에게 전하는 하느님의 사자使者이다.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며, 한편으로는 사람을 지켜주고, 희망을 주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진다. 성경은 천사에 대하여 구약부터 신약까지, 창세기부터 묵시록까지 무려 354절을 두고 기술한다. 그런데 천사는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수많은 조각가나 화가들이 묘사한 대로 그렇게 생겼을까? 천사는 정말 하얀 은백색의 눈부신 날개를 지녔을까? 남성일까

음악

음악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악보’라는 약속 아래 같은 마음을 노래하는 인간의 또 다른 언어이다. 그래서 악보는 약속이고 언어이다. 세상 어디서나 그 악보에 따라서 같은 소리를 내고 같은 곡을 연주하도록 약속된 음악이라는 언어이다. 우리 인간은 남녀노소 누구나를 막론하고 하느님과 인간 간에 맺어진 약속을 따라 자기만의 음색으로 단장하여 움직이도록 요청받는다. 하느님께서는 각자의 마음이라는 악보에 양심이라는 음표와 지성이라는 박자를

예능인들을 위한 모범이요 수호성인

TV를 보다가 보면 노래, 무용, 연기, 연주, 낭독, 코미디, 마술, 스포츠 등등 헤아릴 수 없는 각양의 대중문화 분야에서 예능인들의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세월이 가면서 이제는 누가 누구인지 구별도 못 할 만큼 유행 따라 표준화된 외모 속에서도 사람들은 스타들을 귀신같이 구별하고 알아본다. 그러한 스타들의 경우에 대부분 기획사라는 것이 뒤에 있어서 각종 미디어를 통하여 그들을 관리하고 산업화하며 시장화한다.

유다 이스카리옷

유다 이스카리옷은 스승이었던 예수님을 배반한 사도 열둘 중 하나이다. 히브리말로는 יהודה איש-קריות이라 쓰고 희랍어로는 Ἰούδας Ἰσκαριώτης이라 표기한다.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이름이 이름 그 자체의 뜻으로서 praised 곧 ‘찬미를 받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뜻이 실제 유다 이스카리옷의 삶과 연결하여 볼 때는 별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이름을 두고 몇 가지 해석이 있지만 ‘카리옷Kerioth 사람 유다’를 뜻한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카리옷은 유다 남쪽의 한 도시로서 히브리

나무 목木

‘나무 목木’이라는 글자는 나무가 땅 밑에 뿌리를 내리는 한편 대지를 뚫고 솟아오르는 모습을 상형한 글자이다. 하느님께서는 낮과 밤, 그리고 물과 뭍을 가르신 다음 뭍에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땅 위에 돋게 하여라.”(창세 1,11) 하심으로써 땅 위에 맨 먼저 나무를 만드셨다. 그렇게 온갖 것을 지으시고 사람까지 만드신

걷는다

사람이 동물과 달라진 것은 두 발로 걸으면서부터였다고 했다. 너도 걷고 나도 걷고 모두가 걷는다. 매일 걷는다. 사람들의 걸음을 보고 또 내 걸음을 보며 ‘걷는다’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가사의 첫 구절 때문에라도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욱마다 눈물 고였네…』하던 백년설(白年雪 : 본명 이창민 1914~1980년)씨의 오래된 노래 ‘나그네 설움’이 절로 떠오른다. 작사가로 알려진 고려성(高麗星

요한 20,1-9(주님 부활 대축일 낮 미사)

오늘은 축일 중의 축일이요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인 부활 대축일을 거행한다. 오늘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를 기쁘게 선포하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이는 우리 주님이시며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영원히 살아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시고 끔찍한 죽음으로 죽임을 당하셨으며, 무덤에 묻히셨다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시어 “죽은 이들의 맏물”이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가

밥자리

누구나 ‘밥이나 한번 먹자’ 할 때 서로 관계를 확인하고 안심한다. 예수님의 공생활은 거의 밥자리의 연속이었다. 오죽했으면 그런 상황이 못마땅해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먹보요 술꾼”(마태 11,19 루카 7,34)이라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했을까? ‘밥자리’를 가리키는 한자 말이 ‘회식會食’이다. 그때 쓰는 ‘모일 회會’는 시루 같은 것이 포개져 있는 형상의 ‘증曾’에 뚜껑을 덮은 꼴이다. 뚜껑 달린 그릇에 이것저것 넣고 끓이거나 조리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