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비결 세 가지

영적 전쟁을 치르며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승리를 거두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첫째, 우리는 세상의 가면을 벗기기 위해 끈질긴 인내의 작업을 해야 한다. 세상은 ‘힘’이 있어야 한다며 영향력과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거짓말하고, 그렇게 나를 유혹한다. 세상은 마치 ‘힘’에 굶주린 야수처럼 나를 부추긴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가 알아들은 것처럼 성령의 열매, 사랑–기쁨–평화–인내–친절–선행–진실–온유–절제(갈라 5,22)가 끝내는 승리하고, 꼴찌 같고

기쁠/기뻐할 흔欣(우거지갈비탕)

‘기쁘거나 반가워 기분이 좋다’는 것을 묘사할 때에 ‘흔연欣然하다’ 하고, ‘흔연스레’라고 하면 ‘기쁘거나 반가워 기분이 좋은 듯하여’라는 뜻이 된다. ‘기꺼운 마음으로 누군가를 잘 대접’하는 것을 ‘흔연대접欣然待接’이라 하고, ‘기쁘고 유쾌함’을 일컬어 ‘흔쾌欣快’라고 한다. 그래서 ‘흔희欣喜’는 ‘환희歡喜’와 같은 말이고, ‘흔감欣感’은 ‘기쁘게 여기어 감동함’을 표현하고, ‘흔희작약欣喜雀躍’은 ‘몹시 좋아서 뛰며 기뻐하는 것’이며, ‘흔흔欣欣하다’는 ‘매우 기쁘고 만족스럽다’는 말이 된다. 참고로, 이

‘청소년기’라는 개념의 확장과 디지털 원주민

『미국의 스포츠 방송 ESPN의 e스포츠 전문기자인 타일러 에즈버그Tyler Erzberger는 ‘한국의 4대 엘리트’로 봉준호 감독과 함께 페이커, 손흥민, BTS를 꼽았다. 중국의 포털 시나닷컴Sina.com에서도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4관왕 소식을 전하면서 한국의 5대 국보로 봉준호, 김연아, BTS, 페이커, 손흥민을 소개했다.』[1] 이 내용을 들으면서 청소년들과 함께 사는 삶을 꿈꾼다는 살레시안은 무슨 생각을 할까? 봉준호 감독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 살레시오회가

함께 살고, 함께 일하라

그리스도교의 수도자들이 세상 앞에 뭐 그리 내세울 만한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자랑할 만한 것도 없다. 그들이 세상보다 좀 더 잘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공동체’라는 것을 이루어 함께 살 줄 안다는 그것뿐이다. 수도자들은 봉헌 생활을 통해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신호와 화살표가 되고자 한다. 그래서 수도자들은 주님께서 우리를

요한 14,1-12(부활 제5주일 ‘가’해)

오늘 복음 말씀의 배경은 최후의 만찬이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제자들과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시고 나서 유언처럼 제자들에게 당신의 뜻을 전하신다. 요한 복음사가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넘어가실 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시면서 의미심장하게 당신 말씀을 전하신다고 증언해 준다. 만찬 때에 예수님께서는 일단 결정적인 “새 계명”(요한 13,34;15,12)을 제자들에게 하달하셨는데, 그 이후 세 명의 제자들과 주고받는

하/할 위爲

‘할 위爲’라고 하는 글자 위에는 ‘손톱 조爪’가 붙어있다. 이는 손톱이나 갈퀴의 모양에서 유래하면서 긁고, 할퀴고, 움켜잡는 모양새다. 이 ‘손톱 조爪’ 밑에 있는 모양을 원숭이라고 보기도 하고 코끼리라고 보기도 한다. 원숭이라고 보면 원숭이가 손톱으로 할퀴고 무엇인가를 움켜잡는 모양이다. 원숭이가 머리를 긁거나 쥐어뜯는 모습으로 재주 많은 원숭이를 표현하면서 원숭이가 사람처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뜻에서 ‘할 위’가

5월의 여왕이신 성모님과 함께 하는 달

복되신 우리의 어머니, 성모님의 독특하고도 거룩한 체험과 지혜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훌륭한 나침반이 된다. 가톨릭교회는 5월이면 항상 이달을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봉헌한다. 이 지상 여정을 마치고 우리가 갈망하는 최종 목적지인 천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성모님의 모범을 따르는 것은 우리에게 큰 힘이요 은총이 된다. 복음서에 나오는 성모님의 직접적인 말씀과 5월에 기리는 파티마의 성모님 말씀으로

성모님과 성체성사 

48피트의 높이와 무게 6톤 반에 달하면서 묵주기도의 신비를 형상화한 거대 청동상으로 미주 동북부 지역에서 가장 큰 성모님을 모신 성모님 성지聖地에서 3년이나 되는 시간을 보내는 행복을 누렸다. 매일 저녁 식사 후에 성모님 주변을 돌 때마다 어느 정도 떨어져야만 보이는 성모님 얼굴을 보았고 당신은 왜 거기 그렇게 우뚝 서 계시는가를 물었다. 신앙은 어떤 의미에서 물음을 넘어선 물음이요, 본질에서 체험적 앎이며,

여행 

여행을 위해서는 일단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날에는 여행을 위해 그다지 준비할 필요도 없어 보이고, 또 준비한다고 하더라도 무엇이든 그때그때 금방 할 수 있기 때문에 뭐 그리 거창하게 준비할 것까지야 있느냐 싶기도 하다. 그러나 진짜 어떤 여행을 준비하려면 충분히 시간을 갖고 서두를 필요가 없는 여유가 있어야만 한다. 여행한다는 것과 달린다는 것은 상반된 실제이다. 오직 여행하면서, 그러니까 길을 닦고 길을 만들어가면서, 아름다운 것도 보고 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