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와 신앙

오늘날 사람들은 소식·사건·사고·정보를 주로 어디에서 접할까? 신문이나 라디오, TV일까?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실시하여 2025년 2월 3일에 발표한 ‘2024 언론수용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종이신문 뉴스 이용률은 9.6%, 라디오 뉴스 이용률은 6.6%로 매우 낮은 수준이며, 미디어별 뉴스 이용률에서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각각 72.2%를 보인다. 이렇게 사람들은 전통 매체로부터 인터넷 기반 매체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의 조사들 역시 다수(80%대)에 달하는 성인이 자신의

두 번 부르심

쓸어야 할 은행잎이 많다. 숲이나 호숫가의 낙엽은 쓸 필요 없이 그대로 두어야 멋이지만, 복잡다단한 인간사 안에 떨어진 나뭇잎들은 멋이기는커녕 자꾸 쓸어야 하고 쓸리는 천덕꾸러기들이다. 쓸어야 할 낙엽처럼 부르심의 삶에도 그런 순간들이 있다. 성경에는 ‘아무개야, 아무개야!’ 하고 하느님께서 누군가를 두 번 거듭 부르시는 특이한 이야기들이 있다. 물론 전해지는 이야기의 맥락에서 부름의 횟수가 관건이 아닌 것은 자명하다.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요한 2,13-22)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의 전례 복음은 통상 요한 2,13-22을 취한다. 이른바 ‘성전 정화 사건’으로 알려지는 대목이다. 이 복음의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으나 이례적으로 공관복음을 넘어 4 복음서가 공통으로 전한다.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에 교회는, ① 예수님의 부활로 이루어진 ‘예수님’이라는 성전 ② 주님만의 집이어야 할 살아있는 성전인 우리 ③ 성전에서 드려야 할 참다운 제물에 대하여 묵상하도록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요한 8,11)

갈등과 폭력이 들끓는 세상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을까? 요한복음 8장 2-11절에는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 전해진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실 때, 소란이 일었다. 한 무리가 분노에 들끓어 한 여인을 끌고 왔다. 그녀는 간음하다가 잡힌 여인이었다. 그들은 그녀를 예수님 앞에 내던지며 외쳤다. “모세는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녀는 이미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는 한 인간이

새로운 희망의 지도를 그리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집은 총 5개의 장(개막 메시지, 헌장, 교령, 선언, 폐막 메시지)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선언’에는 「그리스도인 교육에 관한 선언-교육의 중대성」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우리 시대」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인간 존엄성」 3편이 있는데, 이중 「그리스도인 교육에 관한 선언-교육의 중대성」 반포 60주년을 맞이하여 교황 레오 14세께서 사도(사목) 서한을 발표하였다. *** 교황 레오 14세의 사도

신애론(2-1)

제2권 인간세대의 역사와 하느님 사랑의 천상적인 탄생 제1장 하느님의 완전성은 유일하고 무한히 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다 해가 뜰 때, 아침 노을이 붉게 물들다가 조금 후 즉시 어둡게 움푹 파인 듯 보이거나 해질 때, 어둠침침하고 흐려 날이 꾸물거리면 비가 올 징조라고들 흔히 말한다. 테오티모여, 태양은 붉지도 검지도 않고 회색도 아니며 푸르지도 않다. 저 거대한 광모(光母)와도 같은

돈 보스코의 편지(4)

4. 토리노 시 법원 치안 담당 판사님께 E II,812 오라토리오의 어떤 젊은이가 신학생 쥬셉페 마자렐로에 대해 제기한 고소 건과 관련하여, 돈 보스코가 자신의 견해를 밝힘 *** 토리노, 1865년 4월 18일 토리노 시 법원 치안 담당 판사님께,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오라토리오의 제본소에서 조력자로 일하고 있는 마자렐로 신학생에 대해 고지된 출두 명령, 그리고 파로디 페데리코, 카스텔리 조반니,

모든 성인 대축일(마태 5,1-12ㄴ)

*번역글: 엔조 비앙키, <성인들의 통공을 기리는 기쁨의 축일(La gioiosa festa della comunione dei santi)> 하늘과 땅의 성인들 잔치 친구 여러분, 우리는 오늘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성인들의 통공(communion of saints)을 기리는 기쁜 축일을 지냅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의 성인들뿐만 아니라, 아직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성인들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통공을,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히브리서가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마태 5,1-12ㄴ, 첫째 미사)

교회는 오늘 전례복음을 통해서 예수님의 ‘산상설교’(마태 5,1-7,27) 중 첫 부분 ‘참행복’에 관한 묵상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오늘 복음은 연중 제4주일 ‘가’해나 ‘모든 성인 대축일’ 미사에서도 같은 대목을 취한다. ※참조. 엔조 비앙키, 모든 성인 대축일(마태 5,1-12ㄴ): http://benjikim.com/?p=15885  / 교황 프란치스코, 모든 성인 대축일(11월 1일): http://benjikim.com/?p=6731 *오늘 강해의 뒷부분에 이완희 신부의 <위령의 날>에 관한 유래와 해설이 있음 1. “산으로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

루카복음의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루카 18,9-14)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본질을 가르치신다. 이 말씀 안에서 우리는 기도 같지만 ‘기도가 아닌 기도’, 그리고 ‘참다운 기도’가 무엇인지 성찰하게 된다. ① 말이 많은 기도: 입술만 바쁘다. 이는 하느님을 설득하려는 시도일 수 있으며, 많은 경우 자기 확신을 되뇌는 독백이 되어 하느님이 아니라 자기에게 드리는 기도이다. 주님께서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마태 6,7)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