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악에 관하여(*존 바니에)

이태석이라는 후배 신부가 있다. 같은 수도회 같은 관구라고 하지만, 다소 나이 차가 있고, 살아가는 여정에서 서로 비켜 가면서 살아야 했던 관계로 그저 한 후배로만 알고 있을 뿐 잘 알거나 개인적인 교분은 맺지 못한 후배이다. 10년도 넘는 세월 전에 그가 세상을 뜨기 일주일 전 추운 겨울날, 그가 곧 죽을 것이라는 예감 속에서 개인적으로 마지막 인사를 전했던 것이 그와의 마지막

마태 11,25-30(연중 제14주일 ‘가’해)

이른바 ‘파견설교’라고 알려지는 마태오복음 제10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선정하시고 열두 사도를 파견하시며 당부하는 말씀들을 들었다. 이후에 이어지는 11장과 12장에서는 예수님을 두고 대단한 논란이 있었으며 긴장 국면이 이어졌다는 내용을 듣는다. 11장의 첫 대목에서 감옥에 갇힌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마태 11,3) 하고 묻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질문으로

정직한 시민과 착한 신자

7월 4일은 미국 독립기념일이다. 1776년 7월 4일 영국령 북아메리카의 13개 식민지의 대표들이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2차 대륙회의에서 독립선언문을 발표하고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56명이 서명하면서 시작된 독립기념일이다. 그 독립선언문은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니,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라고

음악은 사랑을 낳고

어거스트 러쉬 영화는 “들어보세요. 들려요? 음악 말이에요. 저는 어디서든 들을 수 있어요. 바람 속에서도, 공기 속에서도, 빛 속에서도. 음악은 어디서나 항상 우리 주위에 있어요. 마음을 열기만 하면 돼요. 그저 가만히 들어보세요.”라는 속삭임과 함께 너른 밀밭에서 황홀하게 춤을 추는 ‘에반 테일러’(프레디 하이모어Freddie Highmore)로부터 시작한다. <어거스트 러쉬August Rush>는 커스턴 쉐리단Kirsten Sheridan 감독 작품의 헐리우드 영화로 2007년 11월에

죄의 근본 식별

죄의 근본을 식별하지 않는 우리 인생은 ‘거의’ 의미가 없다. 자주 발생하고 노출되는 우리의 실패와 약점들 저변에 깔린 것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한낱 멍청한 시도에 불과할지 모른다. 넓은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 죄의 근본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 잡초를 제거하고 싶다면 눈에 보이는 줄기만 잘라내지 말고 뿌리를 뽑아내야만 한다. 그렇지

사랑은

사랑은 지적질이 아니다. 사랑은 고발이 아니다. 사랑은 계도와 훈육, 계몽이 아니다. 사랑은 내가 아는 만큼 상대방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비아냥거리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여럿이 함께 모여 한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시기와 질투에 뿌리를 두고 상대방을 위하는 척 가장하는 가면이 아니다. 사랑은 분리와 분열의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느낌이나 감정의 상태가

‘지지’ 타령

어린 아기들이 뭔가 더럽거나 지저분한 것을 만지려고 할 때 그런 아기들을 향해 어른들이 ‘지지야, 지지!’ 한다. 이럴 때 쓰는 한자의 글자는 아마도 ‘그칠 지止’일까 싶다. ‘안 돼!’ 라든가, ‘멈춰!’라는 뜻일 것이니 말이다. ‘금지禁止’니 ‘폐지廢止’니 할 때도 이 글자가 들어간다. ‘그칠 지止’는 왼쪽 발을 내려다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발목 아랫부분의 발의 모양을 본떠 만들어진 글자로서 ‘발,

기도의 행동(ACTS)

왼쪽의 표에서 보듯이 ‘행동’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복수형 ‘acts’를 이용하여 그리스도인의 행동이나 행동 방식을 풀이하려는 시도들이 있다. ‘acts’의 낱개 글자에 단어 하나씩을 붙여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의 행동을 알기 쉽게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A(Adoration) – 찬미와 흠숭, 하느님께 흠숭을 드리고 찬미하는 것은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우치는 것, 하느님 앞에 나의 모습을 겸손하게 살피면서 내 인생의 모든 것이

선물膳物

영어로 ‘선물이나 기부’를 뜻하는 단어들은 대개 present와 gift(애정이나 우정을 표시하기 위해 주는 것), donation(거저 주는 것), 그리고 bonus(덤으로 주는 것) 등이 있다. 이 중에 donation이라는 어휘는 라틴어 ‘donare(주다)’에서 온다. 이를 우스갯소리로 우리 말 ‘돈 내시오’, ‘더 내시오’, ‘다 내시오’에서 왔다며 기부를 종용하는 경우들도 있지만, 원래는 라틴어 ‘donum(선물)’과 연관되어 있다. 흔히 쓰는 ‘pardon(용서, par=모조리)’도 donation의 어근이

성인聖人은 타고나는 것인가 되어가는 것인가?

1988년 포크 듀엣 <시인과 촌장>(하덕규‧함춘호)이 불렀던 가요, 2002년 조성모가 내는 앨범에 실려 대중적으로 다시 알려진 오래된 노래 ‘가시나무’가 있다. 그 노래의 가사는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로 시작하고 같은 말로 끝을 내면서, 내 속에 있는 또 다른 나를 거듭 노래하고, 내 속에 상대를 받아들일 수 없는 가시나무 숲이 있음을 확인한다. 바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