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는 모든 악이 들어오는 대문 「칠극」 제4권은 ‘식분’(熄忿, 불꺼질 식/성낼 분)이다. 분노의 불길을 끄는 방법을 살폈다. 분노는 잠깐 미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났을 때 한 일은 분노가 풀리면 틀림없이 후회한다. 분노했을 때는 오직 자기를 다스리는 데 힘써야지, 남을 다스리려 하면 안 된다. 분노는 복수의 마음에서 나와 갖은 나쁜 말과 욕설, 다툼과 싸움, 살상과 과도한 형벌의 형태로
성경에 동정 마리아의 탄생에 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초대 교회 때부터 성모 신심이 계속되면서 동방 교회에서 먼저 이 축일을 지내기 시작하였다. 로마 교회에서는 7세기 무렵부터 이 축일을 지내왔는데, 이 축일로부터 9개월 전인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잉태 대축일’과 연결되어 있다. 예루살렘에 세워진 ‘마리아 성당’의 봉헌일(9월 8일)과도 관련이 있다. 성모님의 부모님으로 알려지는
베풀 줄 모르는 탐욕의 수레 「칠극」의 제3권 ‘해탐’(解貪)을 살펴볼 차례다. 해탐에서는 말 그대로 탐욕을 해체하는 방법을 얘기한다. 탐욕이란 죄악은 무엇이든 욕심 사납게 그러쥐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최창은 소서(小序)에서 열자(列子)의 한 단락을 인용하는 것으로 서두를 열었다. 어떤 사람이 시장에서 대낮에 황금을 훔치다가 잡혔다. 왜 그랬느냐고 묻자 그의 대답이 이랬다. “그때 제 눈에는 오직 황금만 보이고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이루는 공동체 생활의 세 가지 요체는 기도하는 공동체, 사목하는 공동체, 형제적인 공동체이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해야 하고, 가난한 이가 되어야 하며, 이웃과 형제자매가 되어 윤리적으로 선한 생활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과 공동체는, 매일 기도하는가? 가난한 사람이 되었는가? 함께 사는 형제자매들과 착하게 서로 위하며 사는가? 이런 질문들을 매일 되묻는다. 이 세 질문 위에 매일의 삶이
질투는 교만의 은밀한 벗 「칠극」 제2권은 ‘평투(平妬)’다. 질투로 뒤흔들린 마음을 잔잔하게 가라앉힌다는 말이다. 질투는 남이 잘되는 것을 속상해하고 잘못됨을 기뻐하는 마음이다. 판토하는 질투가 교만의 은밀한 벗이어서 서로 착 붙어 떨어지는 법이 없다는 설명으로 시작한다. 권2는 네 개의 소절로 구성했다. 첫째 남의 악을 헤아려 따짐을 경계함, 둘째 헐뜯는 말을 경계함, 셋째 헐뜯는 말 듣기를 경계함. 넷째
인터넷도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 척박한 아프리카 땅에서 사는 수녀님께서 무지개 사진을 보내주시면서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무지개를 ‘성모님의 허리띠’라 한다고 알려 주셨다. ‘벌레 충/훼虫’이라는 글자와 ‘장인 공工’이라는 글자로 이루어진 ‘무지개 홍虹’이라는 글자는 『형성문자로서 ‘벌레 충/훼虫’이 의미부고 ‘장인 공工’이 소리부인데, 갑골문에서는 두 마리의 용(虫)이 물을 내뿜어 ‘무지개’를 만드는 모습을 그렸고, 이후 지금처럼 형성구조로 바뀌었다.(하영삼, 한자어원사전, 935쪽)』 먼 옛날 사람들은 하늘의 용이 기교한 재주를 부려 무지개를 만든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순수
‘구름 운雲’이라는 글자는 원래 ‘이를 운云’이라고 하는 글자에서 온다. 이 ‘이를 운云’이 ‘구름 운云’이라고 하던 글자를 빌려서 ‘말하다(왈曰)’라는 뜻으로 쓰이면서 ‘이를 운云’이 된 것이다. 이렇게 본래의 뜻을 잃어가는 글자 ‘云’ 위에 ‘비 우雨’를 올려서 원래의 뜻을 찾아주려고 한 것이 현재의 ‘구름 운雲’이다. 현대 일본의 마지막 석학이라 하고 <공자전>으로도 유명한 시라카와 시즈카(1910~2006년)는 허공을 떠도는 구름(雲)에 용(龍)
사나운 사자를 복종시키려면 「칠극」의 제1권은 ‘복오(伏傲)’다. 교만을 눌러 항복시킨다는 뜻이다. 1권은 전체 일곱 권 중 분량이 가장 많다. 그만큼 비중이 크다. 글의 서두는 “교만은 사자의 사나움과 같아서, 겸손으로 복종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로 시작된다. 교만은 무엇이고, 어떻게 생겨나며, 무엇으로 막을 수 있나? 교만을 복종시킴을 책의 첫 자리에 세운 데는 어떤 의미가 담겼을까? 책을 따라가며 읽어 보기로
인생의 온갖 일이란 없애고 쌓는 두 가지 단서를 벗어나지 않는다. 무릇 닦는다는 것은, 묵은 것을 없애고 새것을 쌓음을 말한다. 성현이 온갖 실마리를 들어 훈계한 것은 모두 악을 없애고 덕을 쌓는 바탕이 된다. 무릇 악은 욕심을 틈타는데, 욕심은 본래부터 악한 것은 아니다. 이는 바로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내리셔서 이 몸을 보존하여 지키고 영혼과 정신을 보좌하게 한 공평한
오늘부터 저의 홈페이지에 “고전읽기”라는 코너를 신설하였습니다. 꼭 읽어야만 할 책들이라고 생각하는 책을 부분적으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첫 번째 책은 스페인 출신의 예수회 신부 판토하(D. Pantoja, 龐迪我, 1571~1618년)가 지은 1614년의 작품, <칠극대전七克大全>의 약칭略稱인 <칠극七克>입니다. 우리말 번역본은 1998년에 일조각을 통해 나온 박유리의 번역본과 2021년에 김영사를 통해 나온 정민(베르나르도)의 번역본이 있습니다. 그중 저는 정민의 <칠극七克>을 따라갑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번역본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