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물/먼지 털 몰勿

‘-을 하지 말라’는 금지, ‘아니다’라거나 ‘없다, 없애다’라는 부정의 뜻이 담겨있는 글자가 ‘말 물勿’이다. 먼지를 터는 상황을 묘사할 때는 ‘몰’로 소리를 낸다. 따라서 분주奔走하게, 혹은 걱정스럽게 수선을 피우는 상황이기도 하다. 많이 쓰는 ‘물론이고 말고’ 할 때의 ‘물론勿論(논의의 여지가 없다)’이나 도나우 강변의 전설에서 이름 지어져 왕의 문장으로까지 사용되었다는 독일 이름 vergiss mich nicht(=Forget-me-not)를 옮길 때 말 그대로

의탁의 기도(성 샤를르 드 푸코)

아버지, 당신 손에 저를 내어 맡기오니 당신 뜻대로 하소서. 어찌하시든 감사드리니 저는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나이다. 제 안에, 그리고 당신의 모든 피조물 안에 오직 당신의 뜻만이 이루어지기를, 저는 오로지 이것만을 바라나이다. 당신 손에 제 영혼을 다시 드리오니 제 온 마음 사랑으로 그리하나이다. 주님, 저를 당신께 드리고 싶사오니 제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니이다. 저를 온전히, 한없는 신뢰로,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1821~1861년)

탄생과 성장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1821년 3월, 충청남도 청양의 다락골에 있는 새터 교우촌에서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과  이성례 마리아 복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박해를 피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던 부친을 따라다니다가 경기도 부평을 거쳐 안양에 있는 수리산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이 수리산 마을은 그 뒤 신자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비밀 신앙 공동체로 변모하였다. 이에

어지러울 련/연䜌

‘어지러울 련/연䜌’이라는 글자는 ‘말씀 언言’을 두고 양옆에 ‘실 사糸’를 배치한 형태이다. ‘실 사糸’는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뽑아내는 모양이다. ‘䜌’이라는 글씨를 쓸 때도 ‘말씀 언言’을 먼저 쓰고 왼쪽 ‘실 사糸’, 그리고 오른쪽 ‘실 사糸’를 차례로 쓴다. ‘어지러울 련/연䜌’을 알아듣기 위해서는 가운데 들어있는 ‘말씀 언言’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말씀 언言’을 살펴보면, ① ‘매울 신辛’의 변형과 ‘입 구口’가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만나 좋아하신다는, 그래서 교황님의 집무실에 복사본이 걸려 있다는 사실로 비교적 최근에 널리 알려지게 된 그림이다. 인간 삶의 여정에서 얽히고 설킨 매듭들과 죄의 매듭들을 풀어주시는 성모님을 공경하기 위한 성화이다. 다양한 메달이나 상본, 9일 기도를 포함한 여러 기도문이 있다. 원래 이 그림은 『하와의 불순종으로 생겨난 인간 죄의 매듭이 성모님의 순명으로 풀렸다.(리옹의 성 이레네오, 반이단론Adversus haerses, 3,22)』와 같은 교부들의 묵상에서 출발한다. 원본

축복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고자 하셨을 때, 하늘에서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마태 3,17 마르 1,11 루카 3,22)이라는 말씀이 들렸다고 공관복음은 공통으로 전한다. 예수님께 이 말씀이 들렸던 것은 모든 사람에게도 같은 말씀이 들려지기를 바라셨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방황하며 허덕이는 것은 축복이 부족해서이다. 말썽꾸러기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만 보아도 그것은 그 아이들이 충분한 축복을 받지 못해서이다. 우리는 우리가

청소년 교육과 살레시오

*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2015년 6월 21일 돈 보스코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돈 보스코가 청소년들과 함께 살았던 살레시오회의 소위 모원母院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 토리노의 발도코를 방문하시어 살레시오 가족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하신 즉흥 연설이다. 미리 써 왔던 원고를 마다하시고 생각나는 대로 하고 싶은 말씀을 하고자 하셨던 교황님의 연설은 살레시오 학교 졸업생으로서 당신의 체험을 담아

춤추는 동행

롤 모델, 멘토, 소울 메이트, 영적 지도자, 안내자, 조언자, 수호천사, 보디 가드, 친구, 반려伴侶, 사제동행師弟同行, 교학상장敎學相長, 동지, 도반道伴, 스승과 제자, 주인과 종, 아버지와 아들… 뭐라 하든 어차피 ‘동행’이고 ‘동반’이다. 길든 짧든 인생을 돌아보면, 내가 위기의 순간에 두려움이나 불만이 아닌 든든한 믿음으로 대처하게 해준 동행, 별로 기대하지 않았음에도 꼭 필요했기에 내 인생에 끼어든 동행, 엠마오로 가는

마태 18,21-35(연중 제24주일 ‘가’해)

일반적으로 마태오복음에는 예수님의 다섯 가지 긴 설교가 수록되어 있다고 말하는데(산상설교 5-7장, 제자들 파견에 따른 설교 10장, 비유들을 통한 설교 13장, 공동체에 관한 설교 18장, 종말에 관한 설교 24장), 우리는 지난 주에 이어 오늘 복음으로 네 번째 설교인 공동체와 교회에 관한 설교 중에 펼쳐지는 가르침을 듣는다. 1.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루카 9,23-26(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가’해)-9월20일

*전반적으로 직접 저술이 아니라 인터넷 검색을 바탕으로 편집한 내용임을 밝힙니다. 경축 이동을 하지 않는 지역에 계시는 분들께서는 “복음강해” 코너에서 <연중 제24주일 ‘가’해(마태 18,21-35)>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 전례적 배경 1583년에 중국에 들어온 선교사 마테오 리치 신부의 저서 『천주실의』 등을 조선으로 들여와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학자들은 성호(星湖) 이익(李瀷)과 그 문하생들이다. 그들 가운데 특히 농은 홍유한(1726~1785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