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레아(1)

(번역글, 제릴린Jerilyn E. 펠톤Felton 著, ‘스승님의 친구The Master’s Companion’, Saint Mary’s Press, 2007년 * 20년간의 개인 사업, 임종을 앞둔 남편의 간병, 사목 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제릴린 펠톤은 ‘거룩한 이름이신 예수님과 마리아의 수녀회(Sisters of the Holy Names of Jesus and Mary)’ 공동체의 평신도 조력자가 되었다. 그녀는 개들과 함께 하는 사목적·영적 사목 모델을 개발했다. 그녀는 이른바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그다음 이야기(요한 8,1-11)

예수께서는 고개를 드시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계속해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자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하나 가버리고 마침내 예수 앞에는 그 한가운데 서 있던 여자만이 남아있었다. 예수께서 고개를 드시고 그 여자에게 “그들은 다 어디 있느냐? 너의 죄를 묻던 사람은 아무도 없느냐?”

라자로와 첼랴(루카 16,19-31)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루카 16,19-22) 라자로의

사랑 애愛(2)

어떤 광고에서 ‘사랑을 찾기는 어렵지 않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관련 사이트를 홍보하는 내용을 보았다. 과연 사랑을 찾기가 그렇게 쉬울까? 영국의 시인 오든W. H. Auden(1907~1973년)의 <장례식 블루스Funeral Blues>를 찾아 다시 읽었다. 시인은 『…그는 나의 북쪽이고 나의 남쪽, 동쪽이고 서쪽…나의 일하는 평일이고 일요일의 휴식…나의 정오이며 나의 자정, 나의 대화이며 나의 노래였다. 사랑이 영원한 줄 알았는데, 내가 틀렸다.…이제는 아무것도

고백록(3)

3439. (어머니가 꾸신 꿈 이야기를 통해서 저에게 말씀하신 뒤로)…그 꿈이 있은 뒤로도 거의 아홉 해나 걸렸고(373년경부터 382년까지에 해당한다. ‘제 나이 열아홉 살부터 스물여덟 살까지 9년이란 세월 동안 온갖 욕정으로 인해 홀리기도 하고 속고 속이면서 살았습니다.’-제4권 1.1), 허위의 어둠 속에서 일어나보려고 간간이 용을 써 보았지만, 그때마다 변을 당하면서 나뒹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 정숙하고 경건하고 침착한 과부는 희망으로는

빈센트 회상

아마도 36년 만에, 맨해튼의 ‘더 메트The Met’에 갔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핑계로 게을러진 나를 부추기신 분은 고맙게도 박영선 전 장관님이시다. 뉴욕에 체류하시던 중 어느 날 나에게 The Met에 있는 그림들의 사진까지 보내시며 방에만 처박혀 있지 말라는 듯 말없이 채근하셨다. 빈센트 반 고흐의 컬렉션에 들렀을 때 오래전 빈센트에 미쳐 모든 작품 사진을 모았고, 당시 네덜란드에 체류하던 조카를 통해 온갖 자료를 구했던

마태 25,14-30 또는 25,14-15.19-21(연중 제33주일 ‘가’해)

지난주부터 듣는 마태오 복음 25장에 있는 ‘열 처녀의 비유(1-13절)’, ‘탈렌트의 비유(14-30절)’, ‘최후의 심판 비유(31-46절)’ 중 두 번째이다. 종말에 관한 말씀으로 들려주시는 세 비유 중 열 처녀의 비유에서는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없고 나뉠 수도 없는 것을 묵상하고, 루카복음에도 전하는 오늘 복음의 탈렌트 비유에서는 주님 앞에서 셈해야 할 때 결코 땅에

동행(예수님과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24장으로 구성된 루카복음은 맨 마지막 장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소식을 전하고, 곧바로 뒤이어 부활하신 주님과 그분에 관한 표징을 알아보지 못하고 낙향하던 두 제자와 예수님의 동행(루카 24,13-35)에 관한 이야기, 루벵 대학의 교수였던 스힐러벡스Edward Schillebeeckx가 ‘현대인에게 가장 의미 있는 복음 대목’이라고 소개했던 내용을 전한다. 의미도 의미려니와 ‘동행’을 두고 이 이야기만큼 아름답고 결정적인 이야기는 또 없다. 이 이야기는 스승

고통과 악에 관하여

이태석이라는 후배 신부가 있다. 같은 수도회 같은 관구라고 하지만, 다소 나이 차가 있고, 살아가는 여정에서 서로 비켜 가면서 살아야 했던 관계로 그저 한 후배로만 알고 있을 뿐 잘 알거나 개인적인 교분은 맺지 못한 후배이다. 10년도 넘는 세월 전에 그가 세상을 뜨기 일주일 전 추운 겨울날, 그가 곧 죽을 것이라는 예감 속에서 개인적으로 마지막 인사를 전했던 것이 그와의 마지막

사랑 애愛=㤅·爱(1)

‘사랑 애愛’라는 글자를 두고 쉽게 말해 ‘받을 수受’ 가운데에 ‘마음 심心’이 들어있으므로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 사랑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고, 또 愛라는 글자를 위에서부터 풀어헤쳐 ‘손톱 조爪’ + ‘덮을 멱冖’ + ‘마음 심心’ + ‘천천히 걸을 쇠夊’의 합자로 풀이하면서 사랑에 빠져 넋이 나갈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린(爪) 사람(人→冖)이 가슴의 심장(心)이 강조된 채로 걸어가는(夊) 모습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