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의 덕德

사추덕·향주덕·성령의 선물과 열매 *이 글은 덕德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하여 한국 천주교 중앙 협의회가 발행한 <가톨릭교회 교리서> 개정 제2판 16쇄, 2020년 7월, 1803-1845항을 발췌하여 수록한 내용임 1803. “형제 여러분,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또 덕이 되는 것과 칭송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마음에 간직하십시오”(필리 4,8). 덕(德)은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1-32)에 관한 여러 이름과 뒷이야기

*1994년 헨리 나웬Henri Nouwen(1936~1996년) 신부는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A Story of Homecoming>이라는 책을 출간한다. 이 책은 모스크바에서 자동차로 두어 시간 떨어진 에르미타쥐Hermitage 박물관에 소장된 렘브란트Rembrandt(1606~1669년)의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이라는 그림을 따라가며 루카복음 15,11-32의 비유를 설명하는 책이다. 그림은 렘브란트 생애 말기 작품으로서 262cm × 205cm의 큰 그림이다. 친구의 방문에 걸린 이

데드봇deadbot

*어디서나 ‘AI’라는 말이나 ‘인공지능’, ‘챗봇’이라는 말이 들리는 요즈음이다. 그리고 곳곳에서 그것만이 우리의 미래요 살 길인 듯한 뭔지 모를 확신이 후렴처럼 되풀이된다. 챗봇이라는 말은 이미 비교적 친숙한 어휘인데, ‘데드봇’이라는 말은 아직 많은 이에게 생소할지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말이나 개념을 ‘디지털 영혼’이니 ‘디지털 영생’, ‘디지털 사후 세계’라는 말로 풀어서 소개하기 때문이다. 아래의 글은 Alejandro Terán-Somohano라는 분이 2024년

마르 5,21-43(연중 제13주일 ‘나’해)

오늘 복음에서는 백방으로 딸을 살려보려 했던 회당장 딸의 소생 이야기와 남모르게 눈물 흘리며 철저한 냉대와 외로움 속에서 자신의 치유를 갈망하던 한 여인의 이야기를 듣는다. 전자가 자기 밖에서 치유를 찾던 딸과 아버지의 이야기라면, 후자는 숨어서 자기 안에서 번민과 갈등으로 치유를 모색하던 여인의 이야기이다. 오늘 복음의 내용은 공관 복음사가들이 공통으로 전하는 내용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가부장적인 관습에 따라

영적 독서의 10가지 축복

*글쓴이-에드 브룸Ed Broom 신부(동정 성모의 오블라티 수도회 OMV) 영적 진보를 위하여 우리는 수단과 방법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실천 방법들을 활용해야만 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성화와 온 세상의 성화를 진지하게 추구하라고 부르셨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거룩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라는 주님의 말씀은 분명하고 정확하다. 군인은 장비를 잘 갖추고 무장을 잘해야 한다.

세례자 성 요한(6월 24일)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통해 이루시려는 소명만을 생각하며 거친 광야에서 모진 생활로 극기의 삶을 살았다. 그의 삶은 여태껏 누려보지 못한 풍요의 삶을 사는 오늘날의 인류에게도 시대를 초월해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그는 진실했다. 사는 대로 말하고 말하는 대로 살았다. 예수님께서도 요한을 두고 사람들에게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시편 5편과 돈 보스코

주님의 집 “저는 당신의 크신 자애에 힘입어 당신 집으로 들어가 경외하는 마음으로 당신의 거룩한 궁전을 향하여 경배드립니다.”(시편 5,8) 시편 저자의 가장 큰 기쁨은 예루살렘에 있는 하느님의 집, 주님의 성전에 들어가는 것이다. 경외하는 마음으로 들어서는 성전의 입구이다. 그리스도인에게 모든 성당은 하느님의 현존이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집이며 특별히 성체 안에 계시는 주님께서 계시는 곳이다. 돈 보스코는 젊은이들의 양성

고백록(17)

3645. 주님, 보십시오! 저의 걱정을 당신께 던져드립니다. 제가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당신 법을 두고 놀라운 일들을 헤아리겠습니다.(시편 118,18VL) 저의 미숙함과 저의 나약함을 당신께서는 아십니다. 저를 가르치십시오! 저를 낫게 해 주십시오! 당신의 저 외아드님, 그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숨겨져 있는 분이 당신 피로 저를 구속하셨습니다.(그분이 이미 값을 치르셨다. 피를 흘리셨다. 내가 말하거니와 하느님의 외아드님이

첫걸음

아우구스티누스 성인(St. Augustinus Hipponensis, 354~430sus)께서 “오, 저의 하느님! 켜켜이 깊게 쌓이고 끝없이 잡다한 기억의 힘은 실로 위대하면서도 두렵습니다.(Great is the power of memory, a fearful thing, O my God, a deep and boundless manifoldness.)”(고백록 10권, 17.26)라고 말씀하시던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 혹시 성인께서 ‘하느님께서 주셨다’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던 아들 아데오다투스Adeodatus를 생각하고 있지나 않았을까? 설령 아무리

마르 4,35-41(연중 제12주일 ‘나’해)

오늘 복음은 마르코 복음의 초반부에 위치한다. 마르코 복음의 초반부는 예수님의 갈릴래아 활동 시절 이야기로서 그분께 대한 사람들의 믿음과 그분의 능력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성경에는 성난 바다나 두려운 큰물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다.(참조. 탈출 15,8 시편 89 이사 51,9-10) 오늘 복음에서도 호수는 거칠고 두려우며 위험한 곳이다. 오늘 복음이야기는 요나서와 그 얼개가 매우 흡사하다. 『요나는 주님을 피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