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경 구절이나 성인들의 저작물은 때로 우리를 놀라게 하다 못해 두려워하게까지 한다. 그런 내용은 우리를 치고 때린다. 어떨 때는 정신을 못 차리게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살아계시고 (반드시) 일을 내시고야 마는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이 우리를 흔드시는(unsettled by the living and effective word of the risen Lord)” 것이다. 12월 3일에 기념하는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1506~1552년)의 편지 또한

악마는 유튜브를 입는다

영화가 되기도 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The Devil Wears Prada)>라는 로렌 와이스버거Lauren Weisberger(1977년~)의 2003년 소설이 있다. 그 제목을 따와 말을 만든다면 “오늘의 악마는 유튜브를 입는다.”라는 말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사제로서 세상을 보는 하나의 창은 고백성사 안에서 만나는 신자들과의 만남인데, 최근의 고백성사에서 많은 신자가 유튜브 때문에 겪는 아픔과 고통을 호소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유튜브라는 매체를 거의 사용하지 않으며 유튜브를

거미

‘스파이더맨’이라는 오래된 영화와 드라마가 있다. 작품 속의 거미 인간은 진화를 거듭하고 그 활약은 보는 이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러나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동물이나 곤충 중에서 거미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한다. 그뿐 아니라 영적인 의미에서는 몹시 부정적인 모습이다. 성경에서 거미는 두 번 등장한다. “하느님을 잊은 모든 자의 길이 이러하고 불경스러운 자의 소망은 무너져 버린다네. 그의

신애론(3)

제5장 의지가 지닌 여러 가지 애정에 대하여 지성적 또는 이성적 욕구를 바로 의지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도, 육감적이며 감각적인 욕구에 못지않게 적지 않은 충동이 있다. 그러나 저 감각적인 것은 흔히 격정이라 부르고, 이 지성적인 것은 보통으로 애정이라고 부른다. 철학자들, 더욱이 외교인 철학자들도 때로는 하느님이 나, 그들의 나라나, 덕행이나 학문 등을 사랑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악습을 미워하고 명예를

미국 가톨릭 학교 교육의 현실과 미래

미국 최초의 가톨릭 학교는 적어도 1606년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이 현재의 플로리다 세인트어거스틴에 학교를 세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1782년 필라델피아에 설립한 세인트 메리는 미국의 첫 번째 본당 부설 학교이다. 1800년대에 미국에서 가톨릭 교육의 전통이 확산되었고, 1965~1966학년도에는 가톨릭 학교의 확산이 정점을 이루면서 전체 초중등 교육(K-12)의 10%를 넘어서는 5백 70만 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1만 2천여 가톨릭 학교에서 교육을

연중 제5주일 ‘다’해(루카 5,1-11)

우리는 지난주에 이어 여전히 예수님의 공생활 초기 부분에 머물러 있다. 루카는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지역에서 전도 여행을 하시면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치유와 구마 활동을 하셨음을 기록한 다음, 첫 번째 제자들의 부르심(오늘 복음)을 배치한다. 그런데 루카는 마르코복음이 전하는 제자들의 부르심(마르 1,16-20)이나 마태오복음의 전하는 내용(마태 4,18-22)과는 다소 다른 각도에서 제자들의 부르심을 전한다. 루카의 기록은 여러 세부적인 풍부함과 함께 이미

가톨릭 교육이 지닌 위대한 선익

우리가 안정과 전통보다는 변동과 변화로 점철된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미국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코로나 시대를 살며) 공중 보건을 관리하는 이들의 대응에 따라 2020년부터 온라인 수업이 보편화되었고, 이에 따라 부모들은 초중고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자기 자녀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훨씬 더 잘 알게 되었다. 엄격한 코로나 마스크 착용과 함께 진보적이면서도 반-미국적인 분위기 때문에 많은

할머니 성인들

교회의 역사는 노인의 경험과 젊은이들의 새로운 생각들이 어우러지는 지혜를 추구한다. ‘할배, 할아범’ 등으로 부르는 할아버지는 ‘크다’는 뜻의 ‘한’을 붙인 ‘한아비’라는 말에서 왔다. ‘할미, 한미, 할마니, 할멈, 할맘, 할매’로 불리는 할머니 역시 ‘크다’는 뜻의 ‘한’을 담았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버지, 어머니를 넘어 분명 그보다 더 ‘큰’ 분들이시다. 두 분을 함께 부를 때는 엄마·아빠, 할머니·할아버지 하듯이 엄마가 먼저이고

주님 봉헌 축일(루카 2,22-40)

시메온과 한나라는 두 노인이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하신 약속, 메시아가 오시리라는 약속을 성전에서 기다립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기대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움직임으로 가득했습니다. 시메온이 어떻게 했는지를 살펴봅시다. 무엇보다도 그는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 안에서 구원을 보았으며, 마침내 그는 “아기를 (자기) 두 팔에 안았습니다.”(참조. 루카 2,26-28) 이 세 가지 동작을 간단하게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특별히

숨겨진 보물, 청소년과 살레시안

복음에서 거의 3분의 1은 비유이고, 성격과 패턴이 다른 요한복음을 제외하더라도 공관복음에만 40여 개의 비유가 전해진다. 비유는 우리를 옭아매고, 깜짝 놀라게 하고, 흔들어 의문을 품게 하고, 빠져들게 하고, 관심사를 살아 있게 하고, 생각에 거듭 몰두하게 하고, 뭔가 채워 넣어야 할 열린 페이지로 남게 하며, 조바심 나게 하고 깨어있게 한다. 예수님의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은총을 청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