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과 프레즐/프레첼

정리되지 않은 정보는 그저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빤히 알고 있지만, 정보는 스스로 자가 학습하고 생성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가 넘쳐나고 또 넘쳐나는 정보로 정보에 접하는 이들을 익사시키거나 바보로 만드는가 하면, 알고리즘이라는 영특한 도구를 등에 업고 날개라도 단 듯 특정한 방향으로 사람들을 세뇌하고 가스라이팅 한다. 그런데도 현명한 이는 접하는 정보를 잘 식별하고 활용하여 자기식대로 정리한다. 이럴 때 인터넷은

신자들의 도움이신 마리아 강복

전례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후배 신부로부터 돈 보스코가 제정하여 교황청으로부터 승인을 받아 로마 전례에 공식적으로 편입된 「도움이신 마리아 강복」의 구성과 그 유래에 관하여 질문을 몇 차례 받았다. 그 후배는 특별히 우리가 성무일도를 바칠 때 ‘끝기도’ 끝에 부르거나 형제 회원들의 장례식을 치르고 성당 문 앞에서 형제의 관을 떠나보낼 때 형제를 환송하며 부르는 노래인 ‘살베 레지나’ 뒤에

주님 부활 대축일 ‘다’해-낮 미사(루카 24,1-12)

성토요일 밤에 파스카 성야를 지낸 교회는 ‘사흘 때 되는 날’에 이르러 주님의 부활을 맞는다. 참으로 죽으셨던 분이 되살아나시어 “살아 계신 분”(루카 24,5)이 되셨다. 그저 우리가 늘 하는 말로 ‘산다’라고 하는 말대로 그저 ‘사는 분’이 아니다. 진정 ‘살아 계신 그분(The Living)’, ‘우리의 주님’이시다. 파스카 성야를 통하여 교회는 인류의 창조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신

성 토요일에 관하여

성 토요일은 성삼일 중 독특한 날이며, 부활절 전 마지막 준비의 날이다. 성 목요일에 성체성사의 제정과 주님의 만찬을 재현하고, 성 금요일에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한 교회는 초대 교회로부터 성 토요일을 기도와 참회·보속의 마지막 날로 지내면서 예수님의 무덤에서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의 부활을 인내롭게 기다리는 날로 지냈다. 성 토요일은 교회가 모든 신자를 강렬한 ‘기다림’으로 초대하는 전례력의 독특한 날

십자가에서 내려지시는 예수님

수많은 작가가 조각이나 그림, 그리고 글들을 통해 십자가에서 내려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렸다. 카라바지오Caravaggio(1571~1610년)라고 부르기도 하는 미켈란젤로 메리시Michelangelo Merisi도 그 장면을 “Deposizione(영어 deposition)”라는 제목으로 그렸는데, 우리 말에서는 간혹 원제목과는 맞지 않게 ‘그리스도의 매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별히 예수님의 수난을 기리는 성금요일에 자주 회자하면서 카라바지오의 최고 걸작으로 알려지는 작품은 바티칸이 소장하고 있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을 배반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파스카 성야(2022 교황님 강론)

많은 작가들이 별이 빛나는 밤을 묘사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밤은 죽음을 예고하는 빛으로 가득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밤에 복음에 나오는 여인들의 인도를 따라 우리 세상의 어두움 안에 하느님 생명의 빛줄기가 처음 비치던 때를 묵상해보도록 합시다. 밤의 그림자가 걷히면서 조용히 빛이 비쳐오기 전에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기름을 발라 드리려고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여인들은 당황스러운 체험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파스카 성야 ‘다’해(루카 24,1-12)

‘성야聖夜’는 밤샘이고 깨어 기다림이며 깨어 지킴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큰 축일의 전야에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열망으로 밤을 지새웠다. 유다인들의 파스카(과월절)는 이집트에서 주님의 천사가 그냥 지나가시고 통과하심으로 이집트인들의 맏배만 죽게 되어 결과적으로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풀려남을 기념하였으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날이 그리스도의 부활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지나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초기 그리스도교는 이날에 주로 새 입교자들의 세례식이 있었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매 주일

주님 수난 성 금요일 ‘다’해(요한 18,1-19,42)

어제 성삼일의 시작인 성 목요일에는 요한 복음사가가 전해주는 대로 주님의 만찬을 기념하고 성체성사의 표징과 이에 대한 해석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들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관련된 사람들, 그리고 당신 아버지께 드리고자 의도하신 대답이었다. 그에 따라 우리는 예수님의 “감사”(εὐχαριστήσας, eukaristésas, 마르 14,23 마태 26,27 루카 22,17.19 1코린 11,24)와 “찬미”(εὐλογήσας, euloghésas, 마르

호산나!

“호산나(ὡσαννά)”라는 말은 우리말 신약성경의 복음서에서만 6번(마태 21,9;21,15 마르 11,9.10 요한 12,13) 등장하는데, 루카복음에는 보이지 않는 말이다. 모두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군중이 환호하며 외치는 말이다. 구약성경의 언어인 히브리어로는 הושע נא(Hosha na) 혹은 הושענא(Hoshana)라는 말로서 “아, 주님, 구원을 베푸소서. 아, 주님, 번영을 베푸소서.”(시편 118/117,25 *참고. “주여, 우리를 살려 주소서, 아아 주여, 우리를 잘살게 해 주소서.”-최민순 역)라는

주님 만찬 성 목요일 ‘다’해(요한 13,1-15)

매년 성 목요일마다 우리는 이 복음 대목을 읽습니다. 단순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해방절 파스카 잔치 식사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이상한 행동을 하셨습니다. 이는 당시 외출에서 돌아오는 주인의 발을 대문간에서 노예들이 씻어 주던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에 와닿는 그러한 행동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당신을 팔아넘긴 배반자의 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