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할 추醜

(4월이 초록이라면 5월의 시작은 초록초록이다 못해 이미 초록 천지다. 초록의 5월에 걸맞지 않은 느닷없는 ‘추할 추醜’는 초록 앞에 선 시들어가는 것들의 타령이다. 엘리엇이 <황무지>에서 묘사한 대로 천지는 초록인데 자신만 한없이 쪼그라들어가는 무녀巫女의 넋두리이다) 어릿광대, 혹은 광대를 한자漢字로 뭐라 하는지 찾아보니 ‘소추小丑’라고 한다고 한다. 어리광을 연상하게 하는 ‘작을 소小’는 그럴듯하지만 ‘추할 추丑’가 그 말에 들어가 있는

교황 프란치스코 무덤의 흰 장미

생전 부탁에 따라 교황 프란치스코의 묘소가 산타 마리아 마죠레 성당에 마련되었고, 2025년 4월 27일 일반에 공개됨에 따라 수많은 이들이 묘소 앞을 찾는다. 묘소 앞에는 아무런 수식어 없이 ‘FRANCISCUS’라는 이름만이 새겨졌고, 그 앞에는 흰 장미 한 송이가 놓였으며, 벽면에는 평소 늘 목에 걸었던 착한 목자가 새겨진 철제 십자가의 복제본이 걸렸다.(*사진-교황청 공보국) 바티칸 뉴스에 따를 때, 흰

부활 제3주일 ‘다’해(요한 21,1-19 또는 21,1-14)

어떤 이가 책을 쓰면서 책을 쓰게 된 목적을 결론으로 밝혀야 그 책은 비로소 출판된다. 그런데 이 결론 부분에 이어서 어떤 장을 추가하고자 한다면 이전 내용과 어떤 연관성을 지을 수 있는 결정적이고도 중요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일이 제4복음서에서도 일어난다. 지난주 복음에서 이미 들었던 제20장의 결론에 이어 오늘의 전례 복음은 그 이후에 추가된 제21장의 내용

유다의 구원?

오늘날 일정 부분 우리 교회에 유다 이스카리옷의 이미지를 복원해보려는 시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참회나 회개와는 별개로 하느님의 자비를 선포하려는 시도를 반영한다. 최근 2021년 4월 1일자 교황청 기관지(L’Osservatore Romano) 1면에, 그것도 성주간을 여는 시점에 ‘우리의 형제 유다(Nostro fratello Giuda)라는 제목으로 프리모 마쫄라리 신부의 강론이 실리게 된 것도 이러한 시도 중 하나일 것이며(참조. 유다를 어깨에

베르골리오 신부의 살레시오 회상

1990년 10월 20일, 당시 신부였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Jorge Mario Bergoglio, 故 프란치스코 교황, 1936~2025년)는 아르헨티나 교회의 역사가였던 살레시오회 카예타노 브루노Cayetano Bruno 신부에게 긴 편지를 썼다. 이 편지는 당신 부모님의 혼배성사를 집전하셨고, 1936년 12월 25일 자신에게 세례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남매들의 세례성사에 이르기까지 가족의 대소사를 함께 하면서 가족의 친구로서 가족의 영적 여정을 동반하였던 살레시오회 신부 엔리케

교황님의 엠마오 소풍

현지 시각 2025년 4월 21일 오전 7시 35분, 교회의 전통에 따라 가장 큰 명절인 부활절 연휴의 계속으로 ‘작은 부활절(파스퀫타Pasquetta, 영어-Easter Monday)’이요 부활 팔일 축제 첫날이며 ‘천사의 월요일(Lunedì dell’Angelo)’을 맞는 날이었다. 이날 이탈리아 사람들은 ‘스캄파냐타scampagnata(영어-jaunt to the countryside)’, 곧 교외로 가까운 나들이를 나가기도 하는 날이다. 이런 습관에 따라 교회의 많은 사람은 이날 이른바 ‘엠마오 소풍’이라는 것을

부활 제2주일 ‘다’해, 하느님의 자비 주일(요한 20,19-31)

예수 부활 대축일 다음 주일은 전통적으로 ‘사백주일(卸白主日-풀다, 떨어지다, 낙하하다 할 때의 ‘풀 사卸’)’로 불리었다. 부활 대축일에 세례를 받은 새 영세자들이 영혼의 결백을 상징하는 흰옷을 입고 부활 팔일 축제를 지낸 다음 부활 제2주일에 벗었기 때문이다. 많은 지역에서는 이날 어린이들의 첫영성체를 거행하기도 하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대희년인 2000년 부활 제2주일에 폴란드 출신의 파우스티나 수녀의 시성식을 거행하는

천사의 월요일(마태 28,8-15)

*‘작은 부활절’이라고도 부르는 부활 팔일 축제의 첫날은 ‘천사의 월요일(Lunedì dell’Angelo)’이라고도 불린다. 이날에는 항상 복음으로 마태 28,8-15를 읽는다. 아래는 2024년과 2023년 천사의 월요일에 있었던 교황 프란치스코의 부활 삼종기도 훈화의 번역문과 원문이다. *** (2024년 4월 1일)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행복한 부활절이 되시기를 빕니다! 오늘 부활 팔일 축제를 지내는 월요일, 복음(마태 28,8-15)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여인들의

함께 걸으셨다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루카 24,15) 「함께 걷는다는 것은 날줄 씨줄처럼 함께 엮여 한 옷감이 되듯이 그렇게 하느님의 자녀라는 공통의 존엄성에서 출발하는 것 서로에게 겁을 주거나 뭉개지 않고 서로 옆에 있는 이를 인내하며 옆에서 함께 걷는 것 그 누구도 뒤처지지 않고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 사랑과 인내로 서로를 들으면서 함께 한 방향을 향해,

용서의 조건

*교황 프란치스코는 2017년 3월 21일 그의 거처인 마르타의 집 경당에서 드린 사순 제3주간 화요일 아침 미사(제1독서: 다니 3,25.34-43 복음: 마태 18,21-35)에서 우리 모두 ‘부끄러워할 줄 아는 은총(수치심의 은총)’을 청해야 한다면서 묵상을 나눴다. 이 묵상은 3월 31일자 교황청 기관지인 L’Osservatore Romano 영어판에도 실렸는데, 한국말 번역과 영어본을 게재한다. 보도문으로 실린 내용을 첨삭하고 재구성하여 교황님의 강론처럼 번역했다.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