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련精練·창조적인 불안·의심

우리가 삶의 의미에 무관심할수록 생활 수단에 탐욕스러워집니다. 확신이 없을수록 안정적인 삶에 대한 욕구가 커집니다. 인정받지 못할수록 갈채를 원하고, 소명을 알지 못할수록 권력욕이 자랍니다. 하느님이 선물로 준 재능을 알지 못할수록 눈에 보이는 능력을 더 탐합니다. 이런 탐욕 가운데 인간은 정련을 거부하고,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는 고통에 무덤덤해집니다. 참된 의미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헛되이 껍데기를 구합니다. 외적인 것을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다’해(루카 9,11ㄴ-17)

지난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낸 교회는 오늘 다시 한번 또 다른 교의의 옹호를 위해 설립된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거행하면서,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그날까지 교회가 당신을 기억하여 성체성사를 거행하도록 명하신 사실을 기린다. 예수님의 교회는 매일, 매주 성체성사를 거행하면서도 성체성사의 다할 길 없는 신비를 특별한 날, 곧 성령 강림절 후 두 번째

돈 보스코와 성모님의 여러 호칭

돈 보스코의 마리아 신심은 인생의 여러 단계에서 그가 만났던 어머니로서 현존하신 성모님, 그리고 성모님의 자녀로서 그가 성모님과 맺었던 생생한 관계에서 나온다. 돈 보스코는 베키의 어린 시절에 성모님 상 앞에서 세웠던 기도 결심으로부터 키에리와 토리노에서 만나 공경을 드렸던 성모님 상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성지순례를 위해 다녔던 피에몬테와 리구리아의 여러 성당에 이르기까지 그때그때 여러 이름의 성모님들을 만났다.

삼위일체의 신비

가톨릭교회의 기본적인 4대 교리는 천주존재天主存在, 삼위일체三位一體, 강생구속降生救贖, 상선벌악賞善罰惡이라고 배웠고, 또 그렇게 가르쳤다. 그중 삼위일체는 하느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이신 삼위이시면서도 한 분 하느님이시라는 분명한 내용이면서도 인간의 이성이나 말로 논증하거나 설명할 수 없어 신비이다. 신비는 몸으로 배워 알고, 고백하며, 찬미하는 믿음이다. 신앙 고백 그리스도인의 「첫 ‘신앙 고백’은 세례 때에 이루어진다. ‘신경’은 무엇보다도 세례 신앙의 고백이다. 세례는 “아버지와

레오 14세 교황과 착한 의견의 성모님

새 교황님을 맞이한 교회와 온 세상이 새로운 교황님의 입과 모습, 몸짓, 그리고 일정에 주목하면서 과연 그분께서 어떤 리더십을 펼쳐주실지 궁금해한다. 어떤 이들은 그분의 한 달을 돌아보며 그분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분석하여 향후를 예측하는 기사를 쏟아내기도 한다.(참조. 새 교황의 말마디들 https://benjikim.com/?p=14108) 그런데 그러한 심층 보도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성모님 신심에 관심을 갖는 이는 드물다. 교황님께서는 교황으로 선출되신

십자가 곁에 서 계신 성모님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요한 19,25) 형언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 속에서도 성모님은 망연자실로 주저앉거나, 그렇다고 엎드려 통곡하고 있지도 않았다. 아드님 예수의 죽음과 슬픔을 말없이 견디며 십자가 곁에 굳건하게 “서 있었다.” 우리도 인생의 고통 앞에서 십자가를 바라보며 성모님처럼 똑바로 “서 있어야” 한다. 나의 처절한 고통 앞에서 위로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다’해(요한 16,12-15)

교회는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첫 주일로 삼위일체 대축일을 규정한다. 이는 1334년 교황 요한 22세께서 교회의 공식 축일로 지정하면서 그렇게 되었다. 이 축일은 예수님의 생애와 관련된 어떤 복음적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역사 안에서 니체아 공의회(325년)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를 통하여 확정된 교의를 기념하여 거행하고 이에 관해 신앙을 고백하고자 함이다. ‘삼위일체’라는 말 자체는 교의적인 말마디로서 성경에서

새 교황의 말마디들

6월 8일이면 새로운 교황 레오 14세께서 267대 교황이 되신지 한 달이 된다. 온 세상이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인다. 꼭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그분을 그렇게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세상사가 늘 그렇듯이 예상되고 기대되었던 많은 후보자와 달리 예상을 뒤엎고 뜻밖인 듯한(?) 새로운 교황이 앞으로 어떤 노선을 취할 것인지, 그리고 가톨릭교회를 어떤 방향으로

오순절Pentecost

예수님의 체포와 십자가형 집행으로 그동안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 도망가거나 두려움 속에 숨어 두문불출하였다. 그러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오순절의 성령강림 이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된다. 유다인들만이 아닌 이방인들에게까지 나아가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다. 이를 암시라도 하듯 성령강림 장면을 기록하는 대목에서 성경은 “다른 언어들”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온” “저마다 자기 지방 말로 듣고 어리둥절해” “저마다

신애론(8)

제12장 영혼의 이 두 부분에는 네 단계의 이성이 있다 솔로몬의 궁전(성전)에는 안마당이 셋이 있었다. 첫째 것은 외교인과 타국인들을 위한 것으로서 하느님을 흠숭키 위하여 예루살렘에 오는 이들을 위한 것이었고, 둘째 것은 이스라엘의 남정들과 부녀자들을 위한 것이었으며(솔로몬은 남녀를 분리하지 않았었다), 셋째 것은 사제들과 레위 족속들의 반열을 위한 것이었다. 끝으로 제일 깊숙한 최고 중심인 곳에는 지성소至聖所라는 데가 있었다.(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