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그리스도교를 그저 바라만 보거나 그리스도교에 관하여 탁상공론이나 벌이려고 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언제나 불편한 스캔들이요 “걸림돌이며 어리석음”(참조. 1코린 1,23)이고, 십자가를 둘러싼 비유와 표징들 역시 그러하다. 그리스도인에게조차 바오로가 코린토 1서 1장 17절에서 고발한 것처럼 “십자가를 헛되게 하려는” 유혹은 되풀이된다. 비그리스도인에게는 십자가와 십자가를 둘러싼 논리가 비인간적이거나, 고통을 그릇되게 해석하려는 잘못된 시도로 비칠 뿐이다. 언제나 그래왔다. 더구나

그레고리안 성가

그레고리오 1세 교황님(Gregory I, 590~604년 재위)의 이름을 따서 그레고리안 성가라고 불리는 ‘Gregorian Chant(영어)’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전례 음악이며, 주로 라틴어(때로는 희랍어)로 불린다. 원래 단선율 음악으로서 자유로운 리듬과 곡조 아래 말의 억양을 따라 물이 흐르듯 말씀을 노래하고, 경건하고 명상적인 분위기 안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목소리만으로도 기도를 노래하면서 전례에 참석하는 이들의 영적 성장을 돕는다. 많은 이가 그레고리오 교황님께서

복음 선포가 이루어진 세 가지 길

이방인의 사도인 바오로는 “그 일은 말과 행동으로, 표징과 이적의 힘으로, 하느님 영의 힘으로 이루어졌습니다.”(로마 15,18ㄴ-19ㄱ)라고 말하면서 이방인을 복음의 길에 들어서도록 인도하는 일, 곧 복음 선포가 이루어진 세 가지 길을 밝힌다. 해당 구절은 신약성경의 언어로 “λόγῳ καὶ ἔργῳ, ἐν δυνάμει σημείων καὶ τεράτων, ἐν δυνάμει Πνεύματος Ἁγίου·(logo kai ergo, en dunamei semeion kai teraton, en dunamei

성모자상聖母子像

교회의 역사 안에 성모님과 아기 예수를 묘사한 헤아릴 수 없는 형태의 성모자상聖母子像이 존재한다. 교회의 유구한 역사와 신앙 안에서 성모자상이 그토록 사랑받아 온 이유에는 여러 가지 신학적, 영적, 인간적 이유가 겹쳐 있다. 1. 성모자상은 인류의 역사 안에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 강생(Incarnation)의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시적인 상징이다. 성모자상은 곧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라는 신비의

연중 제23주일 ‘다’해(루카 14,25-33)

지난주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서 음식을 드신 후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오르시는 여정에 다시 나서시고, “많은 군중이 (예수님의 뒤를 따라) 함께 길을 간다.”(루카 14,25) 예수님의 설교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고, 그에 따라 예수님과 함께 길을 나서서 예수님과 동행하려던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이르셨다.”(루카 14,25)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본성적인 감정이나 우리 자신에

젊은이들의 신앙 찾기

2027년, 과거의 사례로 볼 때 전 세계 젊은이들이 적어도 100만 명 이상 한자리에 모이는 우리나라 가톨릭 세계 청년대회의 구체적인 일정이 공표되었다. 그런데, 미국에 한동안 살았던 인연으로 미국의 젊은이들이 신앙을 찾기 시작하고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등 의미 있는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려온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가톨릭 사제이면서도 변덕스러운 트렌드와 선정적인 주장이 난무하는 문화적 콘텍스트 안에서 Z세대와

<고백록>

블레이즈 파스칼Blaise Pascal(1623~1662년)은 방대했던 자신의 장서를 주변에 모두 나눠주고 「성경」과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두 권만을 간직했다고 알려진다. 성경에 인간과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이야기가 담겼다면, 고백록에는 한 인생의 야망, 열정, 방황, 우정, 가족, 갈등, 욕망, 슬픔, 사랑, 회심, 지혜, 죽음…아름답고 심오한 문장들 속에 실로 모든 것이 담겼다. 고백록은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하느님을 찾아가는 치열한 삶의 요동이다. 고백록의

“위선僞善”(ὑπόκρισις, 휘포크리시스)

‘위선’(ὑπόκρισις, hypokrisis), ‘위선자’(ὑποκριτής, hypokritēs)‘라는 말은 마태오 복음에서 15회, 마르코 복음에서 2회, 루카 복음에서 3회, 바오로 서간에서 3회, 야고보 서간에서 1회 각각 등장한다. 위선이나 위선적인 행동을 고대 희랍어로 ‘휘포크리시스(ὑπόκρισις, 영어 hypocrisy)’라고 한다. 그러한 행동을 하는 이들, 곧 위선자는 ‘휘포크리테스(ὑποκριτής, 영어로는 hypocrite)’이다. 이 말들은 단어 앞머리의 ‘휘포(~아래에, ~로서)’와 ‘크리시스(분리, 결정, 심판, 재판)’가 합쳐진 동사 ‘휘포크리노마이(ὑποκρίνομαι, 말을 가지고

연중 제22주일 ‘다’해(루카 14,1.7-14)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중이시다. 헤로데는 이미 예수님을 없앨 방도를 세웠고, 일부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이를 귀띔해주며 도망하라고 권고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도망가지 않으시고 오직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며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실 때까지 그 길을 가신다고 하시면서,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힘써라”(Ἀγωνίζεσθε, 아고니제스테)

마태오 복음사가가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태 7,13)라고 기록한 것에 루카 복음사가는 한 마디를 더해서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루카 13,24)라고 한다. 루카 복음사가는 다른 복음사가들과 견주어 볼 때 “힘”이라는 말마디를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한다. 루카 복음사가가 기록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도행전에서도 “힘”이라는 말은 빈번하게 등장한다. 루카 복음사가는 “힘”이라는 말마디를 자주 사용하면서 악마와 세상의 힘으로부터 우리를 구하시는 예수님의